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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하루가 허락된 사람들

가을 하늘과 꽃그늘 아래서

by Rosary

로버트 레드포드, 전유성, … 우리 세대를 관통하는 유명인사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흔한 말로 한 시대가 저무는 느낌, 그리고 화살보다 빠르게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있는 걸 느끼면서도 뭐 하나 이룬 것도 없고, 그저 스쳐 지나듯 살아가고 있는 하루하루 시간이 아깝지만 생활인으로 밥벌이를 해나가야 하는 삶이 무겁게만 느껴진다.


영화 <올드보이> 인트로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가 자신의 이름을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라고 풀이하는 장면에 순간 웃음이 터졌으면서도 오래도록 여운이 많이 남고 잊히지 않는 이유는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의 중년들의 삶이 아닐까 싶어서다. 한때는 가슴속에 꿈을 품고 살아가던 우리는 삶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탱하면서 꿈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그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으면서도 방향을 틀만한 여력도, 용기도 없다.


중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허덕거리면서 살아가는 내 모습이 슬프기도 하고, 다가오는 내일이 두렵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구가 없어 내 삶을 누군가와 비교하면서 자괴감에 빠지는 일이 없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랄까. 대체로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지닌 편이지만 요즘은 유독 밥벌이의 무게가 힘들고 젊은 시절 한심하게만 보였던 무임승차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지기도 한다.


출퇴근 없는 무직자일 때는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 부럽더니, 이제는 출근해야 하는 아침이 밝아오면 마음은 어두워진다. 땡땡이의 자유가 있던 학창 시절이 그리워지고,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부모님 그늘 밑에서 부록처럼 살던 어린 날들이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내게 허락된 이런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 시간들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물러가고 연일 높고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화사한 가을꽃들이 흐드러진 날들을 만끽하는 짧은 가을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일에 쫓기고 사람에 치여서 하늘 한번 올려다볼 여유가 없이 살고 있다면 그러지 말자. 기상이변으로 여름과 겨울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고, 봄가을은 찰나에 지나가버린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면 가을 하늘, 시원한 바람, 꽃향기… 당신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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