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살아가도 늘 한 자리
아침 출근길에 KBS 클래식 FM을 즐겨 듣는다. 2km 정도 떨어진 거리에 직장이 있어서 견딜 수 없이 무더운 여름이거나 한파가 찾아온 겨울 날씨가 아닌 경우 대부분 걸어서 출근을 한다. 광고가 없어서 가장 좋고, 클래식 음악 특유의 편안한 선율을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마음이 차분해져서 자주 듣는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익숙한 선곡은 아니지만 매우 낯익은 노래가 첫곡으로 나오는데 괜스레 코끝이 시큰해졌다.
라디오를 들으면서 조그맣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아주 어렸을 때 배웠던 노래임에도 2절까지 가사를 외우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어릴 때 부른 동요 가사들은 대부분 여전히 머릿속에 분명히 남아있는 걸 보면 인생에서 가장 맑고 총명한 두뇌였던 어린 시절에 익힌 것들은 평생 간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렸던 동요 “겨울나무”(이원수 작사, 정세문 작곡)는 어린 시절에 따라 부르면서도 아이들 부르는 동요를 이렇게 청승맞게 쓰셨을까 갸우뚱했던 곡이다. 그런데 이 노래가 발표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겨울나무”는 1957년 발표되었는데 전쟁 후 모두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을씨년스러운 겨울에 외롭게 서있는 나무를 보면 시인은 이런 생각을 했을 법하다.
봄, 여름, 가을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고, 푸르른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풍성하게 달려있는 나무가 그 모든 것을 떨군 채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는 모습은 쓸쓸하고 고독해 보인다. 오랜만에 “겨울나무”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따라 부르다 보니 어쩌면 겨울나무는 자식을 다 키워서 내보내고, 덩그러니 남아있는 늙은 부모님의 모습과도 닮아있는 것 같아 뭉클해졌다.
특히 ‘평생을 살아가도 늘 한 자리’라는 대목은 평생 자식 뒤만 바라보고 해외여행 한번 가보지 못한 채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목이 메었다. 겨울이 와서 “겨울나무”를 선곡했을 뿐일 텐데 혼자 뜨끔한 불효자 입장에서 들으니 너무 아프고 시린 곡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