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한국인과 영어의 상관 관계
영어는 나에게 항상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학교 시험, 수능, 토익/토플, 원어민 대화 등에서 특별한 노력 없이도 좋은 성과를 얻었다. 몇 주간의 유형 익히기만으로도 원하는 점수를 쉽게 얻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라 대기업 생활을 하다가 지원한 그만두고 놀러온 유럽에서... 영어가 공용어인 독일 회사에서 8개도 안되는 회사에 지원했고, 운이 좋게도 그 중 2개의 오퍼를 받고 1.5달 만에 바로 취업을 했다.
이처럼 나에게 영어는 한국어 다음으로 편한 언어였기데, 예전에는 자신은 한국 토종이지만 원어민처럼 영어를 한다며, 영어 관련 컨텐츠를 만들어 돈을 버는 인플루언서들을 회의적으로 봤던 것이 사실이다. '굳이 비법이라고 가르킬 것이 있을까...?' 라는 생각.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영어를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를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초등학교 3-4학년 때 윤선생 A,B,C 테이프(팬다 시리즈ㅎㅎㅎ)로 영어를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영어를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가족끼리 외식을 하고 돌아와 밤이 늦어도 꼭 그날의 진도는 다 나가야 잠을 잤다(재밌어서). 고맙게도 엄마는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시켜 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목표는 항상 원어민처럼 영어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유학 없이는 안 돼"라는 생각보다 "왜 안 돼? 하면 되지"라는 마음가짐이 이상하게 있었다. (근자감...)
5학년 때 용산구로 이사가 우연히 미군 기지 근처에 살게 됐고, 운이 닿아서 친구 2명과 함께 원어민 선생님에게 영어를 배웠다. 특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친구들은 '이것이 기회다!'라는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참여했는데, 진짜 내가 생각해도 너무 어이없는 것이, 당시 나는 너무 수줍어서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진짜 한 마디도 안하고 온 날도 수두룩 했다. (돈을 내며 나를 보낸 엄마가 알면 통곡...)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수업에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니였다. 오히려 반대였다. 말은 하지 않아도, 원어민 선생님의 말과 억양을 관찰하며 집에서 혼자 따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데, 눈빛과 웃음이 참 따뜻했던 당시 내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내가 입을 열길 기다려주셨다. 이와 동시에 미국 문화 경험(할로윈, 미군 기지 내 활동)을 통해 영어에 대한 강한 동기부여가 생겼고, 자연스럽게 연령과 성별을 떠나 다양한 미국인들이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지 지켜보면서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인식하게 되었던 것 같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직장인이 되어서도 영어 신동은 아니었지만, 계속 영어를 배웠고 따라했고, 읽고 들었다. 원어민들, 혹은 유학생이나 교포들과 대화를 하게 되면 그들이 말하는 컨텍스트, 뉘앙스, 발음 등을 열심히 관찰하고 배웠다.
이렇게 돌이켜보면 결국 내가 영어를 잘하게 된 요인은
1. 영어를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인식한 점
2. 어린 시절 자연스러운 동기부여와 긍정적 환경
3. 흥미를 바탕으로 한 꾸준한 노력
정도가 아닐까 싶다.
우리 엄마는 윤선생, 미군 기지 (1년도 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종합 학원을 다니면서 함께 들은 영어 과목 정도 외에는 따로 영어 공부를 하라고 등을 떠밀지도, 돈을 쓰지도 않았다. 사실 내 생각에 윤선생을 3-4년 하면서 내가 한국인으로서 배워야 할 기본 영어 지식은 다 배운 것 같다. 그 이후에는 개인의 동기부여와 노력의 차이일 뿐.
23살 때 칼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했을 때도 출퇴근에 꼭 Economist Espresso를 읽었고, 회사에서 지원하는 전화 영어를 진짜 악착같이 10분씩 했다. 생각해보면 진짜 최고의 혜택... 10년 전 한달에 20만원 돈이었는데, 회사에서 100% 지원을 해줬다. 이 전화영어를 하다보면 현실은 대부문이 별로인 원어민(돈이 목적...)이 많은데, 그러다가 정말 성심성의껏 대화해주는, 거기다가 나와 딱 맞는 선생님이 걸리는 날이 온다.
나의 경우에는 David였다. 좀 정 없고, 날카로운 비판이 처음에는 '이 사람 뭐지?' 싶었는데, 하다보니 단순히 발음 교정 등이 아니라, 내 수준에서 필요한 - 한국어가 아닌 영어 컨텍스트에서 어떻게 조리있게 말하는지 알려주는게 참 마음에 들었다. 그 선생님으로 무조건 이어가기 위해서 난 저녁 9시 10분 매일 통화를 했다. 짐에서든, 지하철에서든, 집에서든, 회식을 할 때도 잠깐 나가서 ㅋㅋㅋㅋ (Why not?). 3년 넘에 하다가 내가 회사를 떠나면서 굿바이를 했지만 심지어 우리는 개인 연락처(이메일)까지 주고 받았다.
그렇게 꾸준함과 흥미가 쌓여, 지금의 나는 현재 독일에서 10년째 영어 공용 글로벌 회사에서 연봉도 2.5배 이상 높이면서 열정적인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
당연히 아직도 부족함을 느끼고, 웹 컨텐츠의 50% 이상이 영어이고, 당연히 AI가 학습하는 데이터와 컨텐츠의 8-90%가 영어라는 점에서, 가끔은 원어민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가 있다. 복잡한 텍스트도 한국어처럼 더 빨리 흡수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하지만 반대로 영어와 한국어 모두 이해할 수 있어 미묘한 뉘앙스와 컨텍스트를 느낄 수 있는 것은 큰 장점이다. 문화 강국이 되어가는 한국의 컨텐츠를 원어로 즐길 수 있어 좋은 시대에 한국인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렇게 장황하게 글은 썼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지만 영어가 공용어처럼 쓰이는 국제 도시인 베를린에 살다보면 그냥 영어를 잘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왜냐면 전세계에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라에서 온 애들이 정말 그냥 밥먹듯이 영어로 일을 하고 살아가고 거기다가 독어까지 완벽하게 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더 감사하다. 영어가 당연한 환경에 놓이다보니 영어가 조금이라도 부족하게 느껴진 날이면 다시 동기부여가 되면서 더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한국에 가면 그 부문이 가장 아쉬운 점이 아닐까 라는 섣부른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