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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침묵 사이의 권력

by 지유이 글

회사에서 “나는 정치 안 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정치의 중심에 있다. 정치는 권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누가 더 많은 말을 하는가보다, 누가 언제 침묵하느냐가 힘의 균형을 결정한다.

직장 안의 정치란 거창한 음모가 아니다. 보고서의 순서, 메일에 누가 참조되어 있는가, 회의 때 누가 먼저 발언하는가. 이 작은 행동들이 보이지 않는 위계와 이해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안에서 우리는 ‘일’보다 ‘사람’을 조심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꼭 한 명씩 있다. 눈에 띄게 나서지 않지만, 늘 중심 근처에 머무는 사람. 그를 여기서는 “박 팀장”이라 부르자.

박 팀장은 표정이 늘 온화하다. 회의 때는 누구보다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상사 앞에서는 한 박자 늦은 타이밍으로 동조한다. 겉으로는 예의 바르고, 뒤에서는 조용히 계산이 빠르다.

그의 특징은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의 정치다. 상사에게 보고하기 전에 반드시 자신이 한 번 필터링을 거친다.
“팀장님, 다른 사람 말로는 이렇게 정리됐습니다만,
제 판단으로는 이런 방향이 조금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 한 문장으로, 보고의 주체는 ‘팀 전체’가 아니라 ‘박 팀장 개인’이 된다.

박 팀장은 누구를 공개적으로 공격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신뢰를 조금씩 흐리게 만든다. “○○씨도 열심히 하는데, 디테일이 좀 아쉽죠.” 그는 단 한 번도 험담을 하지 않았지만, 그 말 한마디로 상대의 이미지가 미세하게 균열된다.

이런 사람의 무서움은 ‘착해 보이는 정치’다. 직설적인 권력욕보다 훨씬 교묘하고 오래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가 정치질을 한다는 걸 이미 눈치채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게 조직의 룰이기 때문이다.

결국 회사는 박 팀장 같은 사람에 의해 돌아간다. 그의 계산은 냉정하고, 감정은 효율적으로 제어된다. 이런 사람은 결국 승진한다. 정치질은 능력의 대체제가 아니라 조직 안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어 기제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피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남는 기술을 익히는 일이다. 직장에서 진짜 강자는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온도를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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