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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직 마케터 앨리스 Jan 30. 2023

안녕, 나의 '100'수 일지

프롤로그

"솔직하게 말해서, 찾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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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다름 없는, 그런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는 대표님과의 점심 식사를 앞두고 '또 똑같은 집이야.' 하고 푸념 정도를 늘어 놓았던. 일 년 중 몇일 되지 않는 완연한 가을이었다. 경기가 좋지 않다고, 제법 이름을 들어본 IT회사와, 오래된 중견 기업에서 조차 "정리 해고", "권고 사직", "도산", "서비스 중지"라는 무거운 단어들이 나돌았지만, 그 일이 나의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우리 팀이 담당하는 서비스가 갑자기 방향성이 바뀌면서 기존 서비스가 잠정적 운영 중단이 되었다. 그 무렵 월 1억을 웃돌던 마케팅 비용도 거의 제로에 가깝게 축소되었다. 우리팀은 서서히 일을 잃어가는 중이었지만, 우리는 그 와중에도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준비하고 제안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낸 한 세 번째쯤의 제안이 다시 한 번 거절을 맞이했고, 그럼 우리 팀은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하냐는 나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솔직히 말해서 찾지 못했다."였다. 그때 깨달안 던 것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일 그래서 해야 하는 일을 했어야 했구나. 회사가 원하는 일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자연한 수순처럼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세상 모든 이별은 아름다울 수 없다. 특히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건네 들어야 하는 순간이라면 더더욱.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나의 커리어가, 즐겁게 일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살아왔던 순간들이, 한 순간 일제히 무너져 내리는 기분. 직장인으로서의 내가 철저히 부정당하는 기분. 내 나이 서른 여섯, 강남 한복판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되리라고는 벌써 이렇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 제일 먼저 가슴이 답답해지며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 증상이 시작됐다. 

2. 1번의 증상과 함께 밥이 들어가지 않았다. 배가 고파 먹기 시작해도 채 세 입을 넘기기 전에 얹힌 느낌이 들어 삼키질 못했다. 그래서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최고의 다이어트는 맘고생이라 했던가)

3. 혼자가 되는 시간이면, 울컥하는 마음에 한없이 눈물이 났다. 

4.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5. 솔직히 말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지 못했다.


한 없이 저 아래로,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져서야 다시 높이 튀어 오를 수 있다는 탱탱볼을 떠올렸지만.

그마저 나를 위한 상투적인 위로의 말 같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할까 곱씹어보다가 놓았던 글을 다시 써보기로 했다.

오늘부터 나에게 100일 간의 쉼을 허락하고자 한다. 사실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삶을 살며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었다. 쉰다는 건, 나에게 행상 불안한 단어였다.


그런 나에게, 단 100일 간만 쉬는 시간을 주고자 한다.

곰이 쑥과 마늘만 먹으며 동굴에서 버텨 사람으로 환생하는 데 드는 시간 100일.

나에게 쉼을 허락하며, 삶을 대하는 100가지 묘'수'를 발견하는 시간 100일.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의 100수 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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