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임교사의 성장통: 서툴러도 무능하지 않은데

자신감의 붕괴와 회복

by 마음이

유치원에서 일한 지 햇수로는 3년 차, 담임으로는 1년 차 초임이다. 지난 2년간은 부담임 교사, 방과후 교사로 일해왔다. 2년 동안 담임교사 옆에서 서포트하는 역할을 해와서 첫 '담임교사'를 맡았던 올 초의 나는 설렘, 열정으로 가득했다.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갈증'이 난 상태가 맞는 것 같다. 왜 이렇게 담임교사라는 직무를 하기까지 갈증을 느꼈을까?


우선 나를 몇 가지 단어로 정의하자면 행동, 배움, 열정, 도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언가를 할 때는 제대로 해야 하고,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면서 최상의 결과를 내기를 좋아한다. 도전을 주저하기보단, 움직이며 배우고 부딪히며 성장하는 삶을 선택해왔다.


학부 때 조별과제를 해도 거의 조장역할을 해오고, 조장이 아니어도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속된 말로 멱살 잡고 캐리 하며 이끌어왔다. '서포트'를 하는 역할이 나한테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고경력 교사의 옆에서 서포트를 하며 일과운영능력, 수업기술, 학부모와의 소통방법 등을 간접적으로 배울 수 있었지만 무엇이든지 직접 부딪혀보고 경험해보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누군가 옆에서 배우는 기간은 1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몬테소리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면서 방과후 교사를 하며 몬테소리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기간을 1년 더 가지게 되었다.


1년 차 때는 담임교사의 업무적인 능력과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웠다면 2년 차 방과후 교사 때는 유치원이라는 기관의 전체적인 운영방식과 흐름을 배울 수 있었다. 주변에 담임교사를 먼저 하고 있는 동기들을 보면서 부러워하면서도 나도 나름대로 배우고 성장하고 있는 중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교사로서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역할은 한 교실의 아이들과 학부모를 책임지는 담임교사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나침반의 역할은 결국 담임교사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난 2년 동안, 담임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나름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해온 것이다.


나는 앞서 말했듯, 열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제대로 해내고자 할 때, 최상의 결과에 도달하기까지 스스로 끊임없이 고뇌하는 과정이 필연처럼 따라온다. 적어도 내가 ‘잘하고 싶은 일’에 있어서, “대충 해” 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뇌의 시간조차 나는 좋아한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힘들어질수록, 마음 한 켠에선 이렇게 생각한다.‘아, 기꺼이 또 하나의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내겠군.’


나는 스스로 안다. 마음먹고 해내고자 한 일은 결국 해내왔고,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다는 걸.

그 믿음은 단순한 낙관이 아닌, 경험에서 비롯된 근거 있는 자신감이다.


그런데 이 자신감이 처음으로 무너져 내렸다. 외부 환경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스스로를 너무 믿어왔던 나 때문이었을까? 아마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나는 담임교사로는 처음이지만, 완전히 초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난 2년 동안 부담임과 방과후 교사로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일해왔고, 그 경험들이 담임 역할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유독 내가 맡은 6세 반만 걱정과 우려,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나는 초임이라는 이유, 옆 반 선생님은 경력은 많지만 6세는 처음이라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우리 반은 유독 주목을 받는 반이 되었다.


7세 유아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발달 특성이나 시기적 특성으로 보기보다는 “6세 때 제대로 배우지 못해서 그렇다”는 시선이 먼저 돌아왔다. 결국 그 화살은 6세 담임 교사에게로 향했다.


또 “작년 6세는 이랬는데, 올해는 왜 이렇지?”

교사도, 아이들도, 교실의 분위기도 매년 다르다.

아이들의 성향도, 구성도, 머릿수도 모두 달라지기 때문에 작년과 다를 수밖에 없는데도, 그들은 계속해서 작년과 비교했다.


그들의 말이 격려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엔 압박 그 자체였다.


물론 이해한다. 기관 운영의 원활함을 위해서,

그리고 6세 시기가 그만큼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에

더욱 우려하고 신경 썼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섣부른 우려와 걱정이 감사하게만 받아들여지진 않는다. 되려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마저 잃게 되었다.


6세 교실에 기웃거리며 도와주겠다고 찾아오는 발걸음, 교무실에서 들려오는 걱정스러운 평가와 부정적인 피드백. 그 모든 것들이 내게는 날 선 시선으로 다가왔다.


누군가 우리 교실을 도와주려고 하면, 나는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가 또 부족해서 도와주시려는 건가?’

‘지금 아무 문제 없이 잘하고 있는데, 왜 자꾸 개입하려 하지?’


그런 생각들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방어적인 태도가 나왔다.

“괜찮아요, 제가 혼자 할 수 있어요.”

정중하지 못했고 날이 서 있었다. 도움을 환영하지 못하고 경계부터 하는 태도는 스스로도 낯설고 낯부끄러웠다.


그때의 내 마음은 이랬다.

‘나는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데, 왜 나를 그렇게 보지 않을까?’


나는 늘 나 자신을 믿어왔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해왔다.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어.’

‘나는 해낼 수 있어.’


그래서였을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부정적인 평가와 피드백은 내 가능성을 너무 좁게, 얕게 규정해버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게 화가 났다. 의욕도 많이 잃었다. 스스로가 믿어온 나를, 그 자리에서 흔드는 기분이었다.


지나고 보니,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그러면서 성장하고 있는 거야. 처음이라 서툴 수 있어도 너는 무능하지 않아.”

“주변의 평가와 피드백에 너무 예민해지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외부의 시선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웃어. 그냥 웃어넘기면 되는 거야.”


누구나 평가와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신경이 쓰이기 마련이다.

가장 신경 쓰였던 평가는 ‘초임이라서’라는 말이었다.

무언가를 실수하면 “초임이라서 그렇지.”

잘해도 “그래도 초임인데 열정은 많네.”


왜 교사 개개인의 능력과 성향, 스타일은 그 자체로 온전히 바라봐주지 않을까? 이 선생님은 초임이라서, 저 선생님은 경력자라서.

왜 초임과 경력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나누어 보는 걸까. 초임이라는 이유로 당연히 겪어야만 하는 평가가 존재하는 걸까?


그렇다면, 교사만큼은 그런 평가에서 예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사는 아이들의 특성을 존중하고, 개별화 교육을 실천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그렇게 존중받지만, 정작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개별적인 존재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서럽기도 하고, 이 기관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외부의 평가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이유는

이 일을 단순한 ‘직업’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하루를 어떻게 더 잘 보낼 수 있을지 매일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어서 진심을다해 신경을 쏟아왔다.


퇴근 후엔 관련 서적을 읽고, 주말마다 자비로 강의를 들었다. 누구의 강요도 없었다. 자발적으로, 배우고 싶어서. 그리고 배움은 즐거웠고,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런 내가 들은,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는

나와 우리 교실 전체를 가볍게 여기는 것처럼 느껴져서

가슴 깊이 박혔다.


그들이 본 건 우리 반의 ‘일부’일 뿐이다. 진짜 교사의 성과는 눈에 보이는 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이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했다.


어느 날 열정 가득하게 아이들과 하루를 보내던 내 낯빛이 어두워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깊숙이 감춰두었던 속내를 이제는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유치원은 관리자와 동료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프레임과 고정된 시선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 안에도 분명 ‘정’이 있었다. 서로를 사람 대 사람으로 생각하고, 인간적인 마음을 나누려는 따뜻함이 느껴지던 곳이었다.


나는 늘 참아왔다. 싫은 말을 꺼내기보다는, 내가 조금 불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감정을 눌러 담는 쪽을 택해왔던 사람이라, 마음을 꺼내 보이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끝까지 묵혀두었다면 언젠가는 감정이 터졌을 테고, 결국 이곳을 떠나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심했다. 담담하게, 하지만 진심을 다해 나의 마음을 관리자에게 전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후련했다.

한 발짝 더 용기를 낸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사회생활 속 내 감정 표현의 방식도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과정을 겪어온 나는 안다. 그저 '열심히 하는 초임 교사'가 아니라 내 교실의 아이들, 그리고 나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성장하려는 '성찰하는 교사'라는 것을

앞으로도 누군가의 시선은 여전히 나를 규정하려 할 수도 있고,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전보다 단단해졌다.


누군가의 열정과 가능성을 그 사람의 고유한 빛으로 바라봐야지. 그 빛을 지켜주는 아이들의 리더인 교사, 선배교사, 주변사람이 되어야지. 따뜻하고 건강한 팀워크를 만드는 어른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여전히 서툴러도 괜찮다. 분명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잘 해내왔으니까. 내가 만들어가고 있는 이 교실에서 앞으로 나답게 흔들리고 또 단단해져 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