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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이야기/바라보기

방향을 바꿔서 보는 중이에요

by 하루하늘HaruHaneul

불평이 새어 나오려던 참에 초록이 바람에 일렁이며 잎 사이사이 가득했던 습기를 하늘로 날린다. 참을성이라는 단어를 갖다 붙이기에 민망한 순간이지만 습도가 높아지고 더운 공기가 가득 차면 속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나를 발견한다.


조금만 움직여도 끈적이는 그런 날에는 가만히 있어도 마찬가지이니 해야 할 일 목록들을 들춰내 순서대로 하나씩 해결한다. 땀이 뚝 떨어지고 정신없이 할 일을 치르고 나니 불평할 틈을 놓쳤다. 씻고 책상 앞에 다가앉아 창 밖을 본다.


가득 차 풍성한 초록 숲 사이를 구석구석 살피다 이른 봄 봤던 산수유니 매화는 어디로 간 건지 눈으로 더듬는다. 고작 향나무와 사철나무 그리고 기다랗게 성장한 중국단풍 군락을 제외하곤 오리무중이다. 잔잔한 잎들이 빈 땅을 가리고 가지와 가지 사이를 메우는 사이 그 시간을 놓쳤나 보다. 대충 저기 어디쯤에 있는 저 나무인가 싶은데 가늘던 그 목대가 언제 저리 성장했는지 못 알아볼 지경이다.


그저 가지 끝에 새로 난 잎들이 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날 때쯤 보이는 연둣빛이 다를 뿐 모두가 한통속으로 푸른 숲이 되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정원은 한 덩어리처럼 보이는데 밑으로 내려가 산책로를 들어가 보면 또 다른 모습이겠지....


녹음이 짙어지고 기온이 올라가면 먹을 것이 많아지는지 잎에 벌레들이 생겨난다. 자연을 좋아한다면서 근처에 가지도 그 속으로 들어가지도 못하는 모순의 인간인 나는 숲과는 여름이 마무리될 때까진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다. 그래서 산책할 때도 근처를 빙빙 돌며 들여다보고 올려다보고 내려다볼 뿐 다가서진 않는다. 시선을 거두지 않고 바라보는 걸 보면 난 숲을 나무를 자연을 좋아한다. 그럼에도 적극적으로 탐험하지도 않는다. 좋아하는 방법도 참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매일 산에 오르고 숲을 거닐며 그 속의 일부가 되고 난 매일 언저리를 맴돌며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멀리서 보니 이리저리 보게 되고 변화에 민감하며 호기심도 그대로다.


이른 봄 산책 때 보았던 그 나무는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마른 낙엽밑을 뚫고 나오던 여린 초록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보고도 이름을 잘 모른다. 가끔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들 중에는 모르는 식물이 없고 모르는 나무가 없어 종종 찾아보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기 일쑤다.


이름을 모른다. 마지막 기억나는 나무이름이 팥배나무였던가... 팥크기의 배느낌? 아무튼 알면 재밌지만 몰라도 그 무지의 즐거움이 있다. 가시지 않는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계속 바라보게 되니 말이다.


알던 것도 잊고사는 나이에 너무 많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행히 이 생에 시험 치를 일은 없을듯하고 적당히 모르는 게 편하기도 하고 핑계를 모아 본다. 편한 쪽으로 둘러대기 실력이 늘어나는 기분이다. 사계절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자연의 변화만으로도 가슴은 벅차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다만 내가 바라보는 그 방향만이 전부는 아니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종종 이곳저곳에서 다르게 봐야 더 많은 걸 보게 된다는 걸 명심하는 중이다. 오늘 내가 보는 방향은 이렇더라. 아마 내일 저쪽 방향에서 보면 또 다른 모습이겠지...


햇살이 지날 때면 보석처럼 빛나는 잎들이 낯설기도 하고 해가 지면 한 덩어리의 어둠이 되어 두렵기도 하고.... 숲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수시로 변덕이다. 그래서 천천히 잘 들여다보는 중이다. 아주 천천히 여러 방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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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STRjuwjL8g0?si=LaV6E6IYmjsW3gP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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