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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의 이야기/연결망에 갇혀

허공에 손을 내민다

by 하루하늘HaruHaneul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 익숙하지만 그 이후의 삶도 제법 길어졌는데 아날로그에 익숙해져 버린 세대인 나는 아직도 이 공간이 어색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주고받고....


첨단 기기가 없는 느리고 긴 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그런 세대다. 손으로 편지를 쓰고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공중전화에 줄을 서서 통화를 하고 약속장소가 엇갈려도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던 시간들이 있었다.


최근 지구 어느 곳에 선 '휴대전화 없이 여행 가기'같은 상품이 출시되어 인기라는 말에 문득 지나간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 지금은 익숙해진 휴대전화니 내비게이션이니 하는 것들이 상용화되어 없으면 불편을 넘어 상상하지 못하는 일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날 때부터 이 촘촘한 연결망의 사회에서 태어난 세대는 자발적 디지털 디톡스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들과 헤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내비게이션이 있음에도 출발 전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지도로 확인하며 가야 할 길을 미리 검색하고 숙지한다. 몸에 붙은 습관이다. 갈 길을 신종기기의 목소리와 함께 할 뿐, 너도 가고 나도 가는 심정이지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는다. 더불어 휴대전화가 몸에 붙어있지 않아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은 나이다.


예전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을 계획하면서도 한 권에 가까운 지도를 출력해서 A4 파일을 책처럼 들고 떠나던 여행도 가능했다. 종종 더러 길을 잃기도 했지만 해가 지기 전에 예약된 숙소에 닿기만 하면 큰 문제는 없었다. 잠시 혼란이 오던 짧은 순간이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그 지역이 각인이 되었을 뿐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금보다 안전했을까? 그럴리는 없다. 다만 과다한 정보가 노출되지 않아 모르고 누비고 다녔던 시간들이다. 마음만은 지금보다 평화롭고 안전했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하다 보니 세상의 모든 것들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시간에 살고 있다. 봉인된 것들이 밖으로 새어 나와 미지의 세계는 점점 더 공포와 불안의 세계를 부각한다. 몰라도 되고 알고 싶지 않은 불편한 정보들이 세상을 어지럽힌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바라보는 방향에 집중하고 앞으로 나아가던 고요의 시대가 종종 그립다. 불안이 없었던 것 아니지만 지극히 사적이었고 하던 일에 집중하면 잊고 마는 정도의 작은 파문이었다. 선택하지 않으면 다가오지도 않을 것들이 이젠은 공중에 나부낀다. 피로를 느낀다. 종이신문과 책을 주로 보지만 그 밖에도 쏟아지는 과다한 정보의 양이 한정된 시간을 앗아가고 바쁜 일이 없는 사람의 마음도 분주하게 재촉한다.


무형의 재촉에 시달린 현대인들이 과거의 속도를 체험하러 돈을 들여 떠나고 있다. 그런 일조차 생경한 일이 되고 상품이 되는 시간에 살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기분이 묘하다.


현대는 괴롭히는 사람 없이 스스로 시달리는 형국이다. 과도한 물건들에 싸여 고르는데 불필요한 시간을 할애하고 타인의 삶이 미세하거나 혹은 과하게 자신의 삶을 비집고 들어와 흔들고 여지없이 피로를 느낀다. 갈 길을 재촉하고 목적지를 선정해 주고 삶의 형태를 규정한다.


지구를 연결하는 연결망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으로 잡아놓은 물고기처럼 생을 위협한다.


휴대폰 없이 여행을 떠나 주어진 시간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일이 흥미롭고 즐거운 체험이었다니 그 후기에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당연했던 일이 특별한 일이 되는 시간이다. 헤어 나올 수 없는 이 연결망, 보이지 않는 그물에 모두가 갇혀있다.


피로가 극에 달하면 지루하고 느린 시간들이 남아있는 곳이 종종 그립다. 멈춘듯한 동네, 하늘이 많이 보이는 곳, 사람들의 표정이 서로 오가는 곳. 그런 곳이 가끔 생각난다. 현재에 살고 있지만 아주 먼 옛날에서 지금의 시간으로 여행을 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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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F5oC5DsFk5c?si=BZIwzLs_wJshC5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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