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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간소음이 아니라 층내소음은 어쩌죠.

아파트 헬스장

by 효롱이


새벽에 눈을 떴다.

잠이 오지 않아서도, 자연스럽게 깬 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더 부지런해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무런 목표 없이 살아가는 요즘의 나를 향한 조용한 열망.


아침 6시 이전에 눈을 뜬다는 것.

나에겐 그다지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수면을 줄이며 일어나던 나날들.

그건 인간이 얼마만큼 피폐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해 줬다.

눈을 뜰 때마다 몸에 가시가 돋친 악마가 나를 내려찍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를 견뎌야만 한다고 믿었다. 젊은 체력을 끌어올려 몇 년을 버텼다.


그러나 이제, 거의 20년 전의 그날들을 떠올리면 생각한다.

굳이 그럴 필요 있었을까.

그건 실패한 결과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자신을 부숴가며 얻는 성취가 늘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잠은 줄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 누려야 할 삶의 본질에 가깝다.

그렇기에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내게 꽤 큰 결심이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풀려버린 나를 단단히 조여주는 첫 단추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

다행히 이사 온 아파트에는 헬스장이 있다.

이동 시간은 단 5분.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도 가까워진다.

이제 ‘운동을 못 간다’는 건, 핑계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라는 것만 더 분명해진다.


그래서 6시, 나는 문을 열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올해 여름은 유독 덥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 대신, 카페에서 나올 때처럼 끈적한 공기가 몰려왔다.

그런데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조용한 길. 조금 이르게 시작하는 하루.

그것만으로도 몸이 피곤한 걸 잊을 만큼 충분했다.

나는 허리를 세우고, 어깨를 펴고 걸었다.

아파트 정원에서 울려대는 매미 소리가 나의 행군을 위한 연주처럼 들렸다.


스트레칭을 하고, 기구 앞에 섰다.

예전 개인지도의 경험이 혼자 하는 근력 운동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나는 소심한 성격이라, 운동을 잘못하면 주위 시선이 신경 쓰인다.

머리로는 안다. 타인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다는 걸.

하지만 가슴은 아직도 한국 사회의 그 많은 ‘입력값’을 소화하지 못한다.


얼마 전 형에게 말했다.

“내가 돈을 가장 잘 쓴 일 중 하나가 피티야.”

요즘은 말도 많지만, 나는 운이 좋았는지 운동 개인지도가 꽤 만족스러웠다.

덕분에 오늘도 자신감을 안고 벤치에 누웠다.

묵직한 중량이 오랜만에 느껴졌다.

운동은, 올바른 자세가 내 몸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하나씩 무게를 올릴 때마다 그 사실을 다시 확인한다.

오늘의 아침은 그렇게 순조롭게 시작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때.

“어이, 왔는가.”

걸걸한 목소리가 울렸다.

헬스장은 커다란 동굴처럼 그 소리를 사방으로 퍼뜨렸다.


문 쪽을 보니,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 두 분이 인사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 매일 아침 만나면 반가울 수도 있지.

흐트러진 집중을 되살리려 애썼다.


하지만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꽤 먼 거리에서, 헤드셋을 끼고 있는 나에게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

나는 이어폰 설정을 잘못했나 싶어 귀를 덮고 있는 장비를 벗었다.

아, 웅변하듯 울리는 대화.


헤드셋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가 장비를 뚫고 있었다.


그 소리는 시골 마을 회관 앞 툇마루에서 대화하는 어르신들의 목소리 같았다.

하지만 이곳은 뚫린 개활지가 아니라 콘크리트 벽에 둘러싸인 헬스장이다.

소리는 퍼지지 못하고,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걷기 운동을 하시던 할머니도 자꾸 그쪽을 쳐다보신다.

표정이 딱, “며느라 오늘은 국이 짜다.” 같았다.

하지만 대상은 가족이 아니라 낯선 입주민.

요즘 같은 시대에 분란은 피하고 싶으니 그저 고개만 절레절레.


나도 시선을 던져봤다.

물총처럼 쏘아보았지만, 어르신 한 분이 더 오셨다.

삼총사가 완성되자, 소리는 더욱 힘을 얻었다.


나는 그저 조용한 아침, 마음을 정리하며 운동하고 싶었다.

그건 이상향이 아니라, 상식이었다.


심지어 벽에는 ‘큰 소리 대화 금지’, ‘지나친 인사 금지’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삼총사는 그리스 철학자처럼 나라일부터 건강 조언까지 주제로 삼아 무대에 올랐다.


한마디 하고 싶었다.

하지만 첫째, 나는 소심하고.

둘째, 그분들은 어르신이고.

셋째, 입주민이라는 복잡한 맥락.

나이 들수록 배워지는 진실 하나.

‘똥은 밟는 게 아니라 피하는 것.’


그래, 오늘은 운이 없었던 걸 수도 있다.

저분들도 오랜만에 만나 흥이 난 걸 수도 있지.

긍정의 마음으로 운동을 조금 일찍 마쳤다.


하지만 알지 않나.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은 대부분 ‘한시적’이 아니라 ‘상시적’이라는 걸.


삼총사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재방송처럼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그래도 정중히 한 마디 드리는 게 나을까.

고민 끝에 짝꿍에게 물었다.


“그분들 고인물이야. 몰라서 그럴까? 관리실 홈페이지에 올리면 동·호수 다 나오니까 소용없어.

정 그러면 차라리 관리실에 전화해.”


듣고 보니 맞는 말.

오늘은 삼총사 어르신들의 민생쿠폰 사용 일정까지 들으며 운동하다 결국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소장님 말.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알겠다고 전화를 끊고 돌아섰다.

그래도, 말은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름 ‘선진 입주민’의 역할을 했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복잡했다.

관리실을 닦달할 수도 없다.

입주민에게 ‘부탁’만 할 뿐, 현실적으로 제재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직접 말할 만큼 용감하지도 않고,

그렇게 부딪히고 나면 괜히 하루 종일 마음에 남을 테니까.


우리만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답게, 내 일에만 집중하며 마음을 내려놓을까.

무엇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


세상은 점점 더 조심스럽고,

알아도 알 수 없고, 해도 할 수 없는 것만 늘어가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지지는 말자.

삼총사와 마주치는 게 싫다고

아침 운동을 포기하는 건, 진짜 지는 일이니까.


나는 지금 커피를 마시며

이 알 수 없는 답답함을 적는다.

글로 써서 털어버리려 한다.


삼총사 어르신들, 오늘 나의 글감의 제물이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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