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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웃는다고 행복한 건 아니야.

by 효롱이

웃는다고 행복한 건 아니다.

남을 때린 놈, 사기 친 놈, 사람을 죽이고 온 놈까지, 방 안에서 깔깔댄다. 철창 밖으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복도에서 서서 순찰을 돌던 나는 울리는 폭소를 들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은 푸르고 웃음소리는 가득한데, 어쩐지 생각이 깊어졌다.


사람이 한 방에 모이면 희로애락이 잦아진다. 혼자만 있는 공간이 감정의 색으로 칠해진다면 단색에 가깝다. 즐거운 노란색이 우울한 회색으로 변한다 해도, 그것은 노란 물에 회색 잉크가 번지듯 천천히 스며드는 식이다. 작은 공간에 감정의 색이 진한 사람들을 구겨 넣어놓았으니, 어찌 보면 밖에 있는 사람들보다 저들이 하루에 훨씬 더 다채로운 감정의 삶을 산다.

후회? 자책? 누군가가 내게 묻던 말이 기억난다. 안에서도 못쓸 그놈은 내게 소리쳤다. “당신이 판사냐고?” 순간 무슨 소리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정신을 차리고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생각해 보니,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말은 자신의 형량을 결정해 줄 판사 앞에서나 하면 된다는 얘기였다. 어이가 없어 나는 그냥 그를 쳐다봤다.


나에 대한 반성은 둘째 치고, 성폭행을 저지르고 온 놈은 피해자에 대한 미안함이 백지처럼 하나도 없었다. 이런 인간 군상들이 모여 있어도 놀랍게도, 작은 네모 방에서 대부분 느껴지는 감정의 색은 나른한 잿빛과 그 사이로 반짝이는 푸른빛이다. 장담하건대, 모여서 낄낄대는 웃음소리의 빈도는 밖에 있는 선량한 시민들보다 몇 배는 될 것이다.


당신은 크게 틀어진 TV 소리를 덮을 정도로 몇 번이나 크게 웃었는가? 나는 지금도 그 소리를 듣고, 남은 하루 동안 수십 번은 그 울림을 떠올릴 것이다.



예전에 이런 말이 있지 않았던가. 행복한 일이 있어서 행복한 게 아니라, 웃다 보면 행복해진다는 말. 그렇다면 저 놈들은 행복할까? 저 정도의 인간 군상이라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기준에서 그들은 결코 행복한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다시금, 스무 살 때도 고민했던 ‘쾌락과 행복의 차이’를 떠올린다. 이제 와서는 그 구별이 너무도 당연해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저런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지 않은 맑은 미소를 들으며 ‘행복의 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예전에는 행복의 양을 늘리는 것만 고민했다. 하지만 마흔이 넘어서며, 내가 가진 행복의 ‘부피’를 키우는 것보다 그 ‘질’을 깊게 하는 데 마음이 간다. 그저 웃어야 한다, 즐겁게 지내야 한다가 아니다. 한 번 웃더라도 의미 있는 미소, 억지로 만들지 않은 자연스러운 만족. 그것을 생각하며 나는 다시 어두운 복도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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