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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by 효롱이
“친구가 이혼을 했는데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어요.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해 줄 만한 게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잘 다니던 회사에서 갑자기 잘린 친구,

몇 년째 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후배.

가끔 그들의 속풀이를 듣고 있으면

나는 늘 과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말하기가 싫어서도, 귀찮아서도 아니다.

그저 그 순간 어떤 말을 면전에 건네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어서다.


슬픈 눈빛으로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

나는 종종 차가운 침묵만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사실,

그들도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일들.


아파 누워 계신 부모님 때문에

결혼조차 미루고 묶여버린 지인,

아이를 갖고 싶지만 되지 않아

밤마다 무너져내리는 부부.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될 문제라면

고민할 것도 없다.

말 그대로 어찌할 수 없는 이야기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일들은

나무의 나이테처럼 하나씩 부풀어간다.

그리고 내게 답을 묻는 그들처럼

나도 그 순간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위로.


그들은 해결책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얼어붙은 감정을 잠시 녹여줄

누군가의 따뜻함을 찾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온갖 제목의 위로 서적이 쏟아지고

나조차 그 비슷한 말들에 염증을 냈는데

막상 누군가에게 선물할 책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 내가 적은 글들도 그럴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순간들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각진 글자가 포근하게 느껴지는,

진짜 위로가 되는 책을 쓰고 싶었다.


나는 내게 특별한 불행이 있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릴 적 대문에 붙었던 압류 딱지,

10년 동안 이어진 시험 낙방,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


가난과 실패,

가족과의 이별은

분명 나에게 아픈 일이었지만

그것들이 나만의 슬픔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친근한 사고(事故) 일뿐이다.

특별한 재난이라기보다

오히려 일상의 한 부분에 가깝다.


그렇기에 나는 글을 썼다.


엄청난 희귀병을 앓은 것도 아니고,

영화 같은 비극을 견뎌낸 것도 아니다.

그저 일상 속에서

우리를 조금씩 괴롭히는 일들,

평범하지만 무겁게 스며드는 불행들에 관한 이야기.


그 평범한 불행을 헤쳐 나가는 글.


그래서 어쩌면《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라는 문장이 자연스럽게 내 책의 제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좋은 책인가?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선뜻 답하지 못할 것 같다.


나는 항상 말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

좋은 책이란 내게 맞는 책이다.


얼마 전, 미국에서 성공한 한 어르신에게

“당신의 인생 책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였다.

그분은 일본 작가가 쓴 자서전을 말했다.


어릴 적 부모님을 잃고,

초등학생 때부터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인쇄소에 들어갔던 소년.

일하면서 글을 익혀 결국 문학가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어르신은 스무 살 무렵,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을 때 그 책을 읽었다고 한다.

군대에 들어가서는

“이 사람보다 나는 얼마나 행운인가”라고 생각하며 불침번을 자청해 공부를 하셨다고 했다.


물론 나는 그런 위인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다.

좋은 책이란 결국,

나의 상황과 비슷하고 그 안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것.


그렇게 보면 좋은 책이란

어쩌면 자신의 인생과 비슷한 책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투박하고 소소한 글로

나와 비슷하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좋은 책이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그 어르신이 말한 ‘인생 책’을 기억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어르신은 아직도 그 책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눈시울을 적신다.


수많은 사람에게 이 책은

기억나지 않는 달빛처럼

조용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딱 한 사람에게 닿는 순간을 꿈꾼다.

그 사람도 나와 같은 삶을 살고 있을 테니까.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바란다.

이 글이

너와 나를 이 순간,

잠시라도 위로하기를.


- 출간을 앞두고 처음 쓰는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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