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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기엔 나는 너무 평범하다.

3화

by 효롱이

그건 아무 생각 없이 먹방 유튜버를 보다가 그 메뉴를 시켜 먹는 것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거창한 목표도, 특별한 동기도 없었다.


그래도 법대를 졸업했으니 무엇인가를 정리하고 적는 일은 조금은 익숙하겠지 싶었다.

그렇다고 최근 글을 꾸준히 써온 것도 아니었다.

각 잡고 노트에 글을 써본 기억이 10년 전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떠올렸다.


그러고 나니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 왜 글을 쓰려하는 걸까?


글을 쓴다는 건 놀이가 아니다.

사실 고된 작업에 가깝다.

그걸 왜 굳이 시작하려는 걸까?


역시 선뜻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밖에서도 물건 값을 잘 묻지 못할 정도로 내성적인 나이기에,

어쩌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생각을 보여주고 싶은

일종의 ‘관종’ 기질이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날씨가 좋으면 산책이나 해볼까 하고 나가는 것처럼

그저 좋은 공간을 발견했으니 한번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나는 브런치와 아무 관련도 없다.

긍정적으로 말하면 내 호의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 또한 지극히 주관적일 뿐이다.)


내 삶은 언제나 생산자보다는 소비자에 가까웠다.

누군가 만든 옷을 입고, 만들어진 영화를 보고, 그려진 만화를 보았다.

그래서 가끔은 ‘만드는 사람’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느꼈다.

왜 나라고 안 되겠나.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은 무한한 자유다.

누구나 쓸 수 있고, 펜과 노트 하나면 작업이 가능하다.

이만큼 기회가 평등한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단순히 읽는 데서 멈추지 않고,

브런치에 글을 적어보기로 결심했다.


적당히 하고 싶은 말들을 써서 발행하면 되겠지 싶었다.

하지만 ‘삐빅.’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읽기만 해서 몰랐는데,

브런치에서 글을 발행하려면 작가 승인을 받아야 했다.


“도전! 브런치 작가 승인.”


처음엔 왜 그런지 의문이었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누구나 글을 올릴 수 있으면 장점도 있지만,

글의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지거나 광고글만 넘칠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내 서재에 글 몇 개를 쓰고,

요구된 형식대로 글을 작성해 제출했다.

사실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인터넷 카페 가입 신청처럼 적당히 양을 채운다는 느낌으로 지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브런치에서 메일이 왔다.

친절한 거절의 답변.

한마디로 불합격이었다.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꽤 크게 흔들렸다.

‘역시 나는 글 재능이 없는 걸까.’

부질없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원 양식의 글은 구색 맞추기였지만,

서재에 혼자 올린 글들은 꽤 정성 들여 적은 글이었다.

합격하면 가족에게 보여줄 생각도 있었는데,

미리 말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대범해야 한다.

작은 일을 작게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이런 말, 어느 책에서나 나온다.

하지만 막상 그게 쉽지는 않다.


체중을 빼려면 적게 먹고,

건강해지려면 운동하면 된다.

우리가 그걸 몰라서 비만약이 나오고,

헬스장에 등록만 해놓고 안 가는 게 아니다.

필요한 결심을 수없이 해도,

포기해야 하는 이유는 그보다 항상 더 많다.


“글도 결국 재능이잖아.”

이런 생각도 들었다.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타고난 능력’에 대해 고민할 일이 많았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했지만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한 경험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더 많이 놀고도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내가 죽을힘을 다해 뛰고 있는데

전날 술 마시고 일어난 사람이

마라톤에서 나보다 앞서 달리는 장면을 보는 것과 같았다.

흘린 땀만큼, 유전자의 차이가 마음 깊숙이 박힐 만큼

명확하게 느껴졌다.


예전엔 ‘노력’을 강조하는 문화가 짙었다.

그리고 그 문화가 지나쳐

‘노오력’이라는 말까지 유행했다.

하지만 사실,

큰 성공을 한 사람 중에는

타고난 능력이 남다른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오히려 그 사람들이

노력을 더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또한 ‘노력’은 유전자보다

본인이 일궈냈다는 이미지를 더 붙여주기 때문에

평판 관리에도 유리하다.


나는 한 번 본 내용을 기억해 버리는 사람도,

운동을 거의 안 해도 체격이 좋은 사람도 봤다.

“무조건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항상 맞다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다.

타고난 것에 집착할수록

스스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갉아먹게 된다.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

나의 기준은 결국 ‘나’뿐이다.

남이 잘하는 것에서 시선을 떼야한다.

물론 쉽지 않다.

타인과 비교하는 문화는

특히 우리나라가 심한 편이다.


그래도 노력이라면

그 시선을 떼는 데 먼저 써야 한다.

나를 바라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면

적어도 어제의 나보다는 발전한다.

그 종착점이 내가 꿈꾸는 곳에 닿지 못하더라도,

지금보다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나아가도

꿈꾸던 곳까지 못 갈 수도 있다.

그건 그때 가서 받아들일 일이다.

지금은 자신의 재능의 바닥을 볼 정도로

몰입해봐야 한다.


글은 축약된 형태라

고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렇게 적고 보니

마치 대단한 인격자처럼 이야기하게 되지만,

이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나 역시 태연하게 넘기기 힘든 고통과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는 증거다.




이 글은 마흔 이후 브런치에서 독학으로 글을 쓰며 출판 제안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을 솔직하게 나누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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