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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글은 초급입니까, 고급입니까

5화

by 효롱이

에세이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왕 글을 쓰는 거라면 잘 쓰고 싶었다.

‘그래, 좋은 에세이를 써야지.’

하지만 무엇이 ‘잘 쓰는 것’인지 떠올려보니,


초등학생이 적분 문제를 마주한 것처럼


그저 막막하기만 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


나 역시 여러 책과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초보자에게 공통적으로 하는 조언 하나를 발견했다.

“짧은 문장으로 써라.”

뜻을 곱씹어보면 ‘가독성 있는 글을 쓰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읽어온 명작 중에는 긴 문장도 많았다.


이해는 되지만, 그 조언이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게 ‘좋은 에세이’에 대한 나만의 탐구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20대를 떠올리면 말한다.

“그땐 어려서 뭘 몰랐지.”


30대가 되면 말한다.

“혈기 넘치던 20대는 그 의미를 몰랐어.”


40대가 되면 또 말한다.

“인생을 그때 어찌 알겠어. 진정한 의미는 지금이야.”


아마 120살까지 살아도 이 흐름은 반복될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좋은 에세이에 대한 기준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출간을 한 지금도 그 기준은 자라는 작은 나무처럼 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작품’이라 부를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고 나름대로 ‘좋은 글’의 기준을 세워보았다.


일부는 보편적인 원칙일지 몰라도

결국은 내 시선으로 분류하고 싶었다.

남을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글의 성장을 측정하기 위한 도구를 갖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 원칙들은 내가 공부하며 정리한 것이지만

완전히 궤를 벗어난 이야기도 아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글이 어디쯤에 있는지 돌아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글쓰기의 단계는 초급, 중급, 고급으로 나눌 수 있다.


초급

기본적으로 글을 쓸 줄 아는 단계.

엄격하게 말해 초급이라 했지만,

사실 이 정도만 되어도 일상에서는 글을 꽤 깔끔하게 잘 쓰는 수준이다.


초급자의 특징은 이렇다.

1. 단문 ― 짧은 문장이 대부분이다.

2. 중복을 쓰지 않는다.

3. 문장을 동사로 끝낼 줄 안다.


중급자 특징

1. 문장의 리듬을 만든다. (단문에서 발전)

2. 문장력 자체가 탄탄하다.

3. 설명하지 않고 보여줄 줄 안다.


사실 중급만 되어도 일반인이 말하는 ‘작가’의 영역이다.

문장 길이를 조절해 호흡을 만들고,

문장 자체가 아름답거나 힘이 있다.

그리고 ‘사건을 설명하는 글’이 아니라

‘보여주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고급

고급부터는 바닥과 천장의 간극이 크다.

어쩌면 고점이 없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고급자의 특징은 이렇다.

1. 힘 빼기 (수사와 감정을 과감히 뺀다.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반대로 때로 과감히 더하는 이도 있다.

2. 글 안에 깊은 철학을 담는다.

3.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사물을 읽는다.



고급에 다다르면

오히려 글 자체를 잘 쓰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글은 반짝이는 무언가를 담는 그릇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반짝임’은 작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감정을,

누군가는 삶을,

누군가는 통찰을 담는다.


이 단계는 글을 넘어 예술이라 부를 만하다.



나는 글의 바다에서 스스로 위치를 점검해 본다.

그리고 고급으로 나아가기 위해 딱딱한 의자에 앉아 노를 젓듯 부지런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가끔 다른 이들도 궁금해진다.

글을 쓰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 닿아 있고,
또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이 글은 마흔 이후 브런치에서 독학으로 글을 쓰며 출판 제안을 받고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김효동 씀)를 출간하기까지의 과정과 기술을 솔직하게 나누는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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