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것은 힘들어서 싫다.
도전은 힘들다. 그래서 나는 피하려 한다.
도망은 쉽다. 그래서 오늘도 이불속에 있다.
그렇게 반응하는 것이 기본적인 나의 마음이고 태도다.
하지만 이것이 나만의 특수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은 본래 그런 존재다.
당신도 아마 최근 누군가에게 잔소리를 한 번쯤 들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 막 쓴소리를 듣고 이 글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진상 상사? 고객? 친구?
장담컨대 “나는 아무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힘듦’, 즉 고통은 일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누워 있고 싶다’고 매일 바라던 사람이
정작 우연히 시간이 생겨 하루 종일 누워 있어도 이렇게 말한다.
“쉬는 것도 일이야. 계속 누워 있으니 허리가 아프네.”
상상이 아니라, 나 역시 여러 번 내뱉은 말이다.
평온한 일상도 ‘완벽한 시간’이라는 감정을 주는 순간은 짧다.
그런데 하물며 돈 받고 일하는 직장 생활은 어떻겠는가.
말해 무엇하겠는가.
가끔 회사의 벽은 거대한 손처럼 나를 움켜쥐고 고통을 주는 것만 같다.
어제도 직장의 압박 속에서 하루를 버티고 퇴근하는 길이었다.
평소라면 산책을 즐기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그마저도 귀찮아져 버스 정류장에 섰다.
이 시간조차 집에 가기 위해 견뎌야 하는 ‘수련’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 반 좀비 상태로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그렇다.
인생은 고(苦)다.
그때 카톡 알림이 울렸다.
형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니 책, 교보문고 간판대에 올라왔던데.”
이어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검은색 바탕에 빨강과 파랑 포인트가 들어간 책 한 권이 수줍게 누워 있는 듯 진열되어 있었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화사하지는 않았지만, 낯설지 않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떠오른 건,
통창 카페 2층에서 동백섬을 바라보며 글을 쓰던 나였다.
출간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일은 버거웠다.
늘 글을 써 왔는데,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그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집에서 쓰지 못하고
항상 창문 너머 바다가 보이는 2층 카페로 도망치듯 나왔다.
40편의 글.
단 하나도 쉽게 나온 글은 없었다.
솔직히 자기 계발서를 쓸 때가 더 쉬웠다.
에세이는 달랐다.
내 이야기를 쓰는 것,
게다가 출간을 위한 에세이는
매 순간 “이렇게까지 힘들어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품게 했다.
하지만 책 표지를 다시 보니
붉은색은 아침 카페서 바라보던 떠오르는 태양 같았고
파란색은 그 아래 반짝이던 바다 같았다.
검은 바탕은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던 저녁의 어둠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마음속에 남는 말은 단 하나였다.
“그래도 잘했다.”
화려한 축제가 울려 퍼지는 감동은 아니었다.
겨울밤, 머그컵에 담긴 따뜻한 라떼를 두 손으로 감싼 느낌, 잔잔한 온기였다.
최근 읽었던 쇼펜하우어의 말도, 니체의 말도 맞는 것 같다.
인생은 고(苦)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삶은 오히려 충만해진다.
고통은 밀어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기꺼이 품어야 할 존재인지도 모른다.
작은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지는 존재가 된다.
형이 보낸 사진을 저장하며 생각했다.
삶은 고통이고,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