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는 자기 노래 제목대로 산다”는 말이 있다.
어쩌면 글을 쓰는 사람도, 결국 쓴 글대로 삶이 흘러가는 건 아닐까?
늦은 오후였다.
근처 아파트에 사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저녁 먹을래요?”
날은 춥고, 밖에 나가기도 싫어 대충 볶은 김치나 데워 먹을 생각이었다.
유독 피곤한 날이었지만, 친구는 쉽게 제안하는 사람이 아니라 거절하면 서운해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냥 우리 집으로 오라고 했다.
전화로 조금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 메뉴는 치즈 듬뿍, 짭짤한 찜닭으로 정했다.
가로등이 켜지고 어둠이 밀려올 즈음, 친구가 도착했다.
별다른 놀거리는 없어서 프로젝터를 배경처럼 틀어두고 식탁에 앉았다.
햇반을 돌리다 말고, 갑자기 ‘손님인데 뭐라도 내놔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일어났다. 마침 아껴둔 초콜릿이 떠올라 꺼내 두고, 지인에게 ‘웰컴 푸드’라며 웃으며 건넸다.
음식은 딱 맞게 도착했고, 거실에 켜놓은 영상은 자동 재생으로 흘러갔다.
평소 관리비 아낀다고 차갑게 두던 거실이었지만, 손님에게까지 절약운동을 강요할 수 없어 난방을 틀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따뜻함, 하얀 배달 용기를 열자 퍼지는 달짝지근한 찜닭 향… 제법 조촐한 파티 같았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큰 화면에 눈 덮인 설원 캠핑 영상이 나왔다.
친구는 그 화면을 물끄러미 보더니 갑자기 말했다.
“내일 우리 산에서 노숙 한번 할래요?”
“노숙이요? 캠핑 말씀하시는 거예요? 갑자기?”
그가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요. 극한 상황에 처하면…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느낄 것 같아서요.”
그는 진지했다.
어디 산으로 가냐고 묻자, 그는 창밖을 가리켰다.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가로등 너머, 그렇게 가까이 있던 뒷산.
그 순간, 나는 내가 책에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버킷리스트 노트를 잠시 책장에 꽂아두고 싶어. 그건 나중의 일이야. 지금은 죽음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 집중하고 싶어.”
찬란한 목표를 좇다가 정작 눈앞의 따뜻한 순간들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필요한 건 멀고 거대한 꿈이 아니라, 조금의 노력으로 오늘 닿을 수 있는 행복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노트를 펼쳐 ‘따뜻한 하루 리스트(Day List)’라는 이름을 적어보았다.
-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중에서
리스트를 추가하는 부드러운 연필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뒷산에서 별 아래 책 읽기
머리는 말한다.
남들은 저렇게 높은 산을 가는데, 고작 동네 뒷산이냐?
가슴은 답한다.
행복까지 굳이 비교해야 해? 내가 해보지 않았던 시도라면 그 자체로 훌륭한 도전이야.
머리는 또 말한다.
지금 얼마나 추운지 알아? 원터치 텐트 하나뿐인데 무슨 캠핑을 해.
가슴은 다시 반문한다.
준비만 하다 저 산바람처럼 흘러간 바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결국 우리는 내일 산에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그 어떤 계획도 세우지 않았다.
그냥 서로 좋아하는 책 한 권 가져와, 별 아래 함께 읽자고만 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