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흔 중반, 근육이 없습니다.

이제는 정신 차릴 때도 되었는데..

by 별미래

어느새 마흔 중반도 곧 반올림하면 반백살이 되어가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마흔 중반 나이대가 흔히들 샌드위치 세대라고, 꽉 껴있는 세대, 낀 세대라고 하더군요.

기꺼이 본인들 인생까지 희생하시면서 저희를 길러주신 부모님도 챙겨야 하고 어쩌다(?) 낳은 자식들도 살뜰히 챙겨야 하는 세대라서 위아래를 동시에 신경 써야 하는 세대라서 그런가 봐요.

(그렇다고 해서 나중에 자식들이 저희를 얼마나 신경 써줄지는 모르겠지만요)


어쩌면 그런 낀 세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들 중에서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빼놓으면 섭섭하다고 울고 갈지 모르는 게 근육이 아닐까요?


이 나이가 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사람들이 죄다 건강, 또 건강을 외치며 운동을 참 많이 하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몸에 근육이 많아야 한다고 하네요. 아차 하는 순간, 방심하는 순간 근육은 빠져나간다고요.


사실 제 몸에는 근육이 많지 않아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예요. 자세히 보면 오돌토돌 정 떨어지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 셀룰라이트들이 제 허벅지에 딱 붙어있어요.

팔뚝에는 늘어진 살덩이들이 제 의지와는 상관없이 맘대로 찰랑찰랑 춤추고 있고요.

뱃살이야 말해봤자 입만 아프죠, 하... 외출 시 감추기 바쁘고 옷은 점점 빅사이즈 쪽에 가까워집니다.


이런 제가 지금 온 힘을 다해 제 몸 생각해서 근육 운동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마음 한쪽 구석에는 여전히 부모님 걱정, 자식 걱정이 더 우선이라고 해도 믿어주실 거죠?

충분히 그럴 수 있고 저만 그런 거 아니죠?^^;;

(특히 친정아버지는 몇 년 전 암 수술 이후 면역력이 많이 약해지셨어요. 그 뒤로 다른 질환이 발병해서 지금도 계속 병원 신세를 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오롯이 혼자 모든 것을 견뎌내는 엄마의 하루도 여전히 힘겨워 보입니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다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저려오네요)


여기에 솔직함을 한 스푼 아니 한 사발 듬뿍 더 추가하자면 일단,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돈을 써가면서 그만큼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부지런히 PT를 받으면서 운동할 사람은 아니라는 말이죠. 게다가 아직도 그러한 일들은 부끄럽다고 생각되어 헬스장 근처는 얼씬도 안 해요. 왠지 모르게 저랑은 상관없는 곳이라고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냐고, 그게 왜 부끄러울 일이냐고 욕먹어도 말은 없습니다.

(물론 근육을 키우기 위해 다른 방법도 많지만 사람이 돈을 쓰지 않으면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더라고요ㅎㅎ집에서는 마음만 먹다가 끝난 적이 수천번이니까요)


무엇보다 그것을 그곳에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해 낼 용기가 없고요.

(집에 있는 남의 편 님도 헬스장 이용료 12개월 지불한 후 몇 번 가다가 말더라고요. 그곳에 여러 번 기부한 돈만 생각하면 아직도 부아가 치밀어 오릅니다)


게다가 나이가 들수록 어쩌면 새로운 사람(PT쌤, 헬스장 관계자 및 그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등)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집니다. 운동하러 갔다가 괜히 사람들한테 마상이라도 입으면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아직 만나지도 벌어지지도 않은 일 가지고 미리 오버하는 이 성격은 못 고칩니다)

또한 젝시*스 같은 운동복을 입을 자신(그냥 츄리닝 입어도 되는데.. 여기 오버 하나 더 추가요), 그걸 입고 누구 앞에 나설 수 있는 마음은 더더욱 없을 정도로 소심한 사람이거든요.(뒤에서는 아마도 운동복과 신발만 며칠 동안 검색하다가 허송세월 보낼 게 뻔할 거예요)


나이를 먹어도 타인 앞에서 당당해질 용기, 내 몸에 투자할 용기는 왜 덩달아 따라오지는 않는 걸까요?

오히려 '에이~뭐, 굳이?' 하면서 그 비용으로 부모님 용돈이라도 한 푼 더 주고 싶고 애 학원 하나 더 보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걸 보니 아직 정신을 못 차렸나 싶네요.

(다행히 아직 두 다리는 멀쩡합니다)


그래도 양심상 그나마 용기를 내어 혼자 도전해 본 일은 있습니다. 걷기 운동이 대세라 하지만 너무 걷기만 하면 운동이 안되잖아요. 작년부터는 가끔씩 혼자서도 등산을 하고 있어요. 비호감 허벅지를 불태우기 위해서 오르막길 경사도가 꽤 있는 산으로 선택했으니 그나마 양심은 있는 거죠?

그것도 처음에는 얼마나 무서웠는지 몰라요. 애라도 데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니까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잖아요. 애 어릴 때는 그토록 혼자 있는 시간이 그리웠는데요. 나이 먹을수록 본의 아니게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지니 이제는 또 외로움과 싸우게 되네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시간들 앞에서 이제는 그 고독을 즐기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매번 고민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누구나 겪는 사()춘기처럼 결론은 없고 (이 나이에 진로) 고민만 하다가 밤을 새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결국 밤새 고민만 하다가 어제와 별다를 게 없는 오늘을 맞이합니다. 이게 현실이죠.


번뜩 이럴 때일수록 지금 이 나이에는 몸 근육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을 지켜야 할 마음 근육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어찌 보면 결국 이 마음 근육이 몸 근육을 만드는 근원이 되니까요.


마흔 중반에 보이지 않는 내면 속, 단단한 마음근육이 없으면 어찌 될까요?

특히 마음 근육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몸 근육보다 더 키우기도 힘들고 지켜내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죠.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져 내리면 회복하기도 쉽지 않아요. 매일매일 무너져 내리는 특성 때문에 몸 근육에 이어 제 마음 근육도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죠.

오늘도 역시나 마음 근육이 자꾸 몸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친구집에서 한참 놀다가 늦게 온 아이를 대할 때, 소울 푸드인 팥도넛을 그냥 지나치지 못할 때, 덥다는 핑계로 마트의 캔맥주 보관 장소를 우리 집으로 옮길 때 기타 등등)


여전히 마음 근육이 맥을 못 추립니다. 매일매일 수십 번 무너져 내립니다. 나 자신을 지탱해 줄 마음 근육이 단단하게 몸의 중심축에서 지탱을 못하고 있습니다. 뿌리가 흔들리니까 내면의 화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여유가 넘치고 화가 나지 않도록 차분하게 마음 근육을 키우기 위해 오늘은 습해진 날씨 속에서 에어컨의 도움이라도 받아봅니다.


이제 정신 차리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아끼며 마음 근육을 단단하게 지켜야 할 시기, 마흔 중반.

오늘까지만 냉장고에서 대기 중인 캔맥주를 시원하게 들이킬 예정입니다.

내일부터 다시 열심히 등산하고(급 장마소식에 마음 근육의 미소가 멈추질 않네요 ㅋㅋ)

스쿼트라도 하며 근육 운동에 부지런을 떨어보겠습니다.

(여전히 운동에 돈 쓸 궁리는 못하고 있어요, 양해부탁드려요)

습해진 날씨에 전기세 생각은 잠시 미뤄두고 주말에는 에어컨을 풀가동하며 아이를 대하겠습니다.

그리고 남의 편을 대할 때는 진짜 손님이라고 생각하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겠습니다.

-비록 내일 또 도루묵이라 하더라도 매일매일 근육을 키우려는 의지는 계속 불태우겠습니다.


다른 방법은 딱히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마흔 중반, 몸과 마음을 튼튼히 할 수 있는 탄탄한 근육을 만드는 비결은 오로지 나 자신을 굳건히 지키는 일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않겠습니다.



덧붙임) 백만 년 만에 발행을 누르려고 하니 참으로 면목없지만 이거라도 용기 내봅니다.

(마음근육이여! 여기 여기 붙어라!! 제발~~~~!!)



사진출처 : 픽사베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