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태양과 맞서 싸우기 위해 이곳에 왔나?
바닷가에 도착하고 짐을 꺼내서 파도 앞으로 나아가는 그 순간, 후회가 밀려온다.
나는 누구? 여긴 또 어디? 누구를 위해서? 휴가를 온 게 아니라 이건 극기 훈련 수준이다.
'바다'라는 두 글자가 주는 위로와 감흥 따위는 필요 없다.
그냥 집에 돌아가고 싶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집에서 에어컨 틀어놓고 수박이나 먹으면서 넷플릭스 보는 게 최고의 여름휴가지"
이런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결혼 후, 시댁 위층에서 6년 동안 도 닦으며 살 때, 1년에 두어 번씩 굳이 사서 고생하면서 갔던 곳은 다름 아닌 친정집이다. 유일하게 편한 마음으로 두 발 뻗고 누워있을 곳은 거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집으로 이사오기 전까지 명절마다 (그리고 주말마다) 친정을 가지 않으면 아래층으로 매일 출퇴근해야 하는 상황이 펼쳐졌다. 사서 고생하더라도 친정으로 무조건 가야 했다. 도로에 갇혀 8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다. 애 어릴 때에는 기저귀부터 분유까지 짐과의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다. 4층에서부터 꾸역꾸역 들고 내려갔다 도로 다시 온다 한들 마다하지 않았다. 알면서도 억지로라도 갔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몇 날 며칠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살기 위해서 갔다.
(지나온 그 시절을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때로는 애통하다)
어느새 이제 결혼 15년 차, 여전히 시댁은 불편하고 오래 있으면 좀이 쑤신다.
(시댁은 지금 차로 7분 거리라 자고 온 적은 없다. 최근에서야 거실 안마의자를 의지해 나도 모르게 두어 번 졸았던 적은 있지만 대놓고 거실이나 방에 누워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친정은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종종 가려고 노력하지만 1년에 몇 번 안 된다.
그 사이 엄마의 주름은 한없이 깊어졌고 아빠는 거의 맨날 병원행이다.
부모님 뵈러 가는 것은 언제나 좋지만 거기도 이제는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다. 괜히 오래 있으면 미안한 마음이 자꾸 솟구친다. 길면 2박, 2박도 엄마한테 죄송하다. 이제는 짧고 굵게 1박 2일이면 충분하다.
"친정이고 시댁이고 상관없이 불편한 건 마찬가지야, 내 집이 최고지"
여행이든 휴가든, 명절이든 간에 어디든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지금의 이 집이 있다는 사실.
(하다못해 집뒤에 공원을 다녀와도, 근처 등산을 다녀와서 땀에 흠뻑 젖어도 바로 집에 도착하니까 아무 염려가 없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인가! 하면서도 지금은 그저 이 공간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잊고 살 때가 많다.
22년 초겨울, 브런치 스토리 작가에 합격했을 때가 선명하게 기억난다. 합격의 기쁨을 표현하자면 은행 지분이 더 많았지만 이 집으로 이사 왔을 때 느꼈던 쾌감과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랄까?
아무것도 아닌 주부의 삶에서 브런치스토리 작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역사적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막 겨울이 시작된 12월의 첫날이었다. 이사하고 사뭇 다른 공기 속에서 맞이한 1층 아파트에서의 첫날밤, 앞으로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설렘 속에서 며칠 동안 밤잠을 설친 것처럼 브런치 작가 합격 이후, 앞으로 나는 여기서 무슨 글을 써야 할까? 어떤 글을 쓰지? 글 써서 유명해지면 어쩌지? 김칫국을 과하게 한 솥 끓여 마신 후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이사하고 한동안 매일 이 집을 쓸고 닦고 꾸민 것처럼 브런치에서도 그때는 모범생이었고 매일매일 출석을 잊지 않았다. 다이어리에 꼬박꼬박 브런치 발행 날짜를 기록했고 조회수며 구독자수도 의식했었다. 라이킷 알람 소리만 울려도 혼자 미소를 지었고 댓글공격을 당했을 때도 그래도 내 글을 읽은 사람이라고, 조회수가 올라간 거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꿋꿋하게 버텼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도 모르게 점점 발행 횟수가 줄어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브런치 앱 접속조차 안 하는 날이 점점 많아졌고 글을 안 쓸 이유는 삼천팔백구십구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윽시 꾸준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가? 스스로를 증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사이, 그렇다고 해서 일상에서 전혀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중 몇 가지 핑계를 찾아보자면,
한 때 (글을 잘 못쓰는 나 같은 사람을 현혹시키기 위해서) SNS에서 한창 좋은 글을 따라 쓰면 글을 잘 쓰게 된다고 해서 따라 쓰기만 해도 글 잘 쓰는 필사 붐이 일어났다. (필사는 지금도 여전히 핫하고 지금은 영어 한 문장 쓰기 필사를 하고 있다)
게다가 인증을 완료하면 또 다른 필사책을 선물 준다고 해서 낚이고야 말았다. 필사 인증에 혈안이 되어 출석 도장을 다른 곳에서 쾅쾅 찍느라 정신없었고 인증 올릴 때 나름 (브런치 작가라고) 짧은 글까지 더하느라 머리를 더 쥐어뜯는 일이 많아졌다.
또한 (제대로 안 읽던) 책도 같이 읽어보려고 여러 군데 모임에 들어가 매일 분량씩 읽고 한줄평과 감상평을 하는 모임, 경제도서를 읽고 돈을 어떻게 아끼고 모을 것인가에 대한 온라인북클럽, 무슨 용기였는지 알지도 못하는 분야인 과학북클럽에 들어가서 까막눈이 되어 책을 앞에 두고 끙끙 앓았던 시간, 도서관에서 무료로 진행되는 각종 강의 등 여러 가지 활동들 덕분에 점차 브런치를 멀리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브런치보다 SNS에 (모임 후기 등) 사진 몇 장 올리고 짧은 글 서너 줄 쓰고 업로드하는 게 훨씬 쉽고 빠르고 편했다.
그동안 이것저것 뭘 한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뭘 했는지 티가 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많은 도움이 되었고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었지만 뭘 해도 빠진 것 같은 느낌, 뭘 해도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조금은 불편한 느낌,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어색한 느낌이 계속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애증의 SNS도 공식적인 글쓰기 공간은 아닐 터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제대로 글을 써야 할 곳은 따로 있었다.
그걸 알기에 찝찝한 마음은 뭘 해도 풀리지 않았고 2% 부족함을 느꼈다.
돌아가야만 했다. 다시 돌아갈 기회를 찾고 싶었다.
긴 여행과 방황 후, 내 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랄까?
지난달 브런치동기 작가님의 글쓰기 프로젝트 <나글아 : 나의 글쓰기 아지트> 3기 모집글을 보았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이건 내게 다시 기회를 주는 신호였다. 놓치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드디어 이번 달, 오랜 기다림 끝에 멱살 잡혀 질질 끌려오긴 했어도 동기님의 프로젝트를 계기로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늘었다. 몇 달 만에 나의 글쓰기 아지트인 이곳에서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영광을 누렸다. 다시 돌아온 그 느낌은 여전히 그대로다. 나쁘지 않다. 이 느낌 그대로 계속 쭈욱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더 좋을까?
(이런 아무 말 대잔치인 글을 보시고 혹시라도 실망한 구독자님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제 글쓰기 동기님의 프로젝트는 마무리되었고
어쩌면 또 내 집처럼 이곳을 당연하게(?) 잊고 지낼게 뻔하지만
다만, 변하지 않은 것은 어딜 다녀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의 집에서 두 다리 뻗고 편하게 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집에서 자판을 두드리며 그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딴 짓거리 잔뜩 하고 돌아와도) 마음 편히 언제든 발행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뻔뻔한 브런치 작가라는 것이다.
그 사실만으로 오늘 밤, 감사한 마음이 충만하기에 그냥 막 용기 내서 발행버튼을 눌러본다.
(이런 아무 말 대잔치인 글을 보시고 혹시라도 실망한 구독자님이 계시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