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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마흔 넘어 알게 된 사실

2024.11.27.수요일

by 우아옹

야근을 하고 아이들 천문대 수업 픽업을 갔다 오니 밤 10시가 훌쩍 넘었다.

세수해라! 입은 옷 정리해라! 잠 잘 준비해라!

백번쯤 외치고서야 자리에 앉았다.

책 좀 보려고 하니 눈이 아른거린다.




알람소리에 눈을 뜨니 부재중 전화가 5 통이다.


대설주의보가 발효되었다.



부랴부랴 눈길을 운전해서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했다.

목장갑을 끼고, 자연스럽게 빗자루를 들고, 눈이 잔뜩 쌓인 길거리로 나가서 눈을 맞으며 땀이 나게 움직였다.


애매한 시간에 비상이 해제되어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6시가 되어서야 탈출 수 있었다.


그 사이 친구랑 눈싸움을 하기로 했는데 약속이 펑크 났다며 우는 딸내미에게 저녁에 눈놀이를 하자는 약속을 굳게 해 버렸다.


집에 도착해서 저녁준비를 하려고 하니 막막하다.

냉동실에 손을 넣으니 오징어 세 마리가 잡혔다.

이런! 아무리 떼어내려도 세 마리가 떨어질 생각을 안 한다.

결국 물속에 퐁당 담가 헤어지게 한 후 각자의 위치에 옮겼다.

덕분에 오늘 저녁은 화려하다.

오징어 전, 오징어국, 버터오징어. ㅋ

어릴 적 엄마가 왜 그렇게 콩나물국, 콩나물무침, 콩나물밥을 해줬는지 이해가 된다.


저녁식사 후 눈놀이를 위해 숙제를 빨리 끝냈다는 삼 남매를 이끌고 집 앞으로 나갔다.

"눈을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자~" 합창을 하며 눈놀이를 하는 삼 남매를 보니

나오길 잘했다 싶은 마음이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얌전이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항상 조용한 아이였고 얌전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소극적인 아이(지금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만)라는 프레임을 항상 지니고 살았다.


난 여러 가지 일은 못해.
난 원하는 게 없어.
난 용기 있지 않아.


근데 확언을 하고 글을 쓰면서 자꾸 물음표가 생겼다.


✔️ 난 지금 아내, 엄마, 딸, 주사님, 우아옹의 역할을 다 하고 있는데?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찌 되었던 5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건 쉬운 건 아니잖아?


✔️ 원하는 게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르고 있는 거였네.


✔️ 난 지금 그걸 찾기 위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우아옹이 되는 도전을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머리에 떠다니던 조각들을 하나하나 꾹꾹 눌러쓰다 보니 비 온 뒤 무지개가 피듯 마음속에 맑은 하늘이 펼쳐진다.



대박

마흔 넘어 외쳐본다.

"사실 난 멀티가 되는 용기 있는 여자였어!"


오늘 하루 애쓴 나를 칭찬해 본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삼 남매에게 확언을 보내는데 비상때문에 정신이 없어 못보냈더니 큰아들이 먼저 확언을 보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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