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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켓으로 가는 길

— San Juan의 어느 여름 초입에

by 남킹

이른 더위가 도시를 감싸

보도는 느릿한 꿈처럼 녹아내리고

행인들의 눈동자는 어디론가 사라지는 구름을 따라간다.

카페의 테이블 위엔

저마다의 사연이 잔처럼 놓이고

아이스크림 가게 앞,

아이들은 녹는 단어들을 혀끝에 올린다.

과일가게는 복숭아빛으로 속삭이고

책방은 조용히 상상의 문을 열고

옷가게는 창밖의 태양을 옷걸이에 걸어두고

약국은 차분하게 사람들의 불안을 접수한다.

생활용품 가게 앞을 지나며

나는 쇼핑 카트를 끌고 걷는다—

삐걱이는 바퀴 소리가 내 마음의 한 귀퉁이를 건드릴 때마다

당신을 떠올린다.

이 도시의 토요일 오후가

이토록 나른하고도 섬세한 빛으로 가득 찰 수 있는 건

내 안에 하나의 기쁨,

하나의 이름,

하나의 사랑이 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당신이다.

내 모든 여름의 중심,

내 장바구니 안의 햇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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