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그녀를 빛 그 자체로, 천사의 순결한 옷자락을 걸친 사랑의 현현으로 오인했다. 어쩌면 그것은 오인이 아니라, 젊음이라는 미망(迷妄)이 빚어낸 필연적인 환각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영혼의 거울에 처음으로 비친 여성, 첫사랑이라는 이름의 열병, 미숙했으나 강렬했던 첫 경험의 기억들. 이 모든 것에 '처음'이라는 신성한 관형사를 붙이며 스스로를 휘몰아치는 정념의 폭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거대한 열정은, 그러나, 기이하게도 나의 두 번째 로맨스 소설, 어딘가 뒤틀리고 그늘진 그 초라한 이야기를 써 내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 동력은 건강한 창작욕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강박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칠흑 같은 밤, 외딴 창가에 홀로 서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달빛처럼, 그 첫사랑의 기억은 지극히 차갑고 창백하게 빛났으며, 결코 내 뻗은 손끝에 온전히 잡히지 않는 아득한 거리에 머물러 있었다. 손에 잡히는 것은 오직 모호한 실루엣의 잔상뿐, 그 윤곽은 기억의 물감 속에서 속절없이 흐릿하게 번져갔지만, 그 존재의 무게감만큼은 내 영혼 가장 깊숙한 심연에서 끊임없이 공명하며 울려 퍼졌다.
희미한 달빛이 오래된 장지문 틈새로 스며들듯, 그녀의 실체는 내 인식의 문지방에서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야말로 나를 사로잡는 치명적인 매혹이었다. 나는 그 감정의 실체를, 그 환영의 본질을 붙잡기 위해 미친 듯이 글자들을 새겨나갔다. 펜촉이 종이를 긁는 소리는 마치 내 안의 혼돈을 잠재우려는 주문과도 같았다. 하지만 가슴 한편에서는 이 모든 것이 헛된 망상, 나 홀로 지어낸 신기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두려움이 안개처럼 스멀거렸다. 역설적이게도, 그 두려움조차 메마른 나의 창작욕을 더욱 거세게 타오르게 하는 기름진 양분이 되었다. 환영임을 알면서도, 그 환영 없이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모순 속에 나는 기꺼이 침잠했다.
나는 사랑의 보편타당한 정의와 그 미덕을 설파하는 서적들을 낡은 도서관 서가에서 닥치는 대로 빌려와 탐독하고 해체하곤 했다. 사랑의 해부학자가 되려는 듯, 나는 플라톤에서 스탕달, 롤랑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논한 모든 현자들의 문장을 파헤쳤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하는 사랑의 이상적인 모습들은, 내가 경험한 (혹은 경험했다고 믿는) 혼란스럽고 격정적인 감정과는 너무도 동떨어져 있었다. 특히 비극적 결말이 희극적 해피엔딩보다 더 숭고한 사랑으로 미화되는 경향은 나를 깊이 아프게 했다. 그 종국에 드러나는 세련되지 못한 우둔함, 비극을 향해 예정된 듯 나아가는 인물들의 불가해한 선택들은, 활자의 제약을 넘어서지 못하고 삶의 복잡성을 담아내지 못하는 작가의 무능함처럼 느껴졌다. 마치 피와 눈물이 얼룩진 벨벳 커튼처럼, 그 화려하고 고상한 수사 뒤에는 언제나 삶의 끈적하고 비릿한 진실, 때로는 추악하기까지 한 욕망의 맨얼굴이 숨어 있었다. 나는 밤을 새워 그 책들을 읽으며, 종이 위에 박제된 검은 활자들 사이에서 내가 갈망하는 사랑의 실체, 그 백색 환영의 진실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책들은 결코 명쾌한 답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내 안의 질문들을 더욱 증폭시키는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도서관의 높고 아치형인 창문, 세월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유리창을 통해 스며드는 희미한 오후의 햇살 아래, 나는 종종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깊은 정적과 착각에 빠져들었다. 책장을 넘기는 내 손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종이의 질감은, 어느덧 그녀의 살결을 어루만지는 듯한 생생한 환상으로 변모했다. 나는 그 감각에, 그 기억과 현실이 뒤섞인 아찔한 현기증에 탐닉하며, 내 소설 속에서 그녀를 완벽하게 재현하려 했다. 때로는 너무 깊이 몰입한 나머지, 현실의 내가 앉아있는 도서관 의자와 소설 속 주인공이 거니는 상상의 공간 사이의 경계가 안개처럼 흐려지곤 했다. 내가 그녀인가, 그녀가 나인가. 현실과 허구는 뒤엉켜 하나의 기이한 태피스트리를 짜나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내가 탄생시킨 로맨스 소설은 필연적으로 뒤틀린 형태를 띨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순수한 사랑의 찬가가 아니라, 비극과 희극의 경계를 위태롭게 넘나드는 곡예였고, 깊은 염세주의와 강렬한 환각이 뒤섞인 혼합물이었다. 사물에 깃든 정념, 인간의 의지를 초월하는 운명, 그리고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서 꿈틀대는 적나라한 육체의 욕망과 성애(性愛)를 탐닉하는 글쓰기였다. 나는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 관계의 급격한 변화와 파국이 가져오는 정변(情變)의 감각을 처절하게 구걸하듯 문장 속에 쏟아부었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만족할 수 없었다. 내 글은 마치 짙은 안개가 자욱한 새벽의 숲길을 홀로 걷는 듯한 방향 감각 상실과 혼란스러움으로 가득했다. 한편으로는 제어되지 않는 격정적인 욕망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해체하려는 이성의 얼음 칼날이 번뜩였다. 열정과 냉소, 갈망과 체념 사이의 간극은 결코 메워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해 팽창하며 내면의 균열을 심화시켰다.
텅 빈 방 안, 싸늘한 공기 속에서 낡은 타자기의 금속성 소음만이 밤의 정적을 갈랐다. 창문을 타고 빗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밤이면, 내 손가락 끝에서 흘러나온 문장들은 때로는 폭풍우처럼 격렬하게, 때로는 가랑비처럼 서정적으로, 혹은 핏물처럼 섬뜩하게 종이 위에 스며들었다. 그 끊임없는 창작과 퇴고의 과정 속에서 나는 점차 나 자신을 잃어갔다. 소설 속 주인공의 고뇌와 나의 고뇌, 그의 환상과 나의 환상이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가 쓴 문장들은 더 이상 객관적인 창작물이 아니라,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비추는 잔인한 거울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그 거울 속에서 매일 밤, 섬뜩할 정도로 낯선 나 자신과 마주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미친 듯이 고치고, 또 고치고, 다시 고쳐 썼다. 단어 하나, 문장 부호 하나에도 집착하며 밤을 지새웠다. 결국 나는 내 소설의 마지막 버전이 무엇인지, 그 수많은 수정의 여정 속에서 최초의 발상과 최종적인 형태가 어떤 실로 이어져 있는지를 도저히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머릿속은 뒤죽박죽 엉켜버린 실타래처럼, 혹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거대한 미로처럼 혼란스러웠다. 수정액 자국과 덧쓴 글씨로 얼룩진 원고지 뭉치들이 방구석에 산처럼 쌓여갔다. 창작의 고통은 끝없이 펼쳐진 불모의 사막을 정처 없이 헤매는 갈증과 같았고, 때로는 이 모든 몸부림이 한낱 무의미한 자기 학대에 불과하다는 깊은 절망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들처럼, 혹은 폭발 후의 파편처럼 산산이 흩어진 나의 생각들을 하나의 일관된 서사로 꿰어 맞추려는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소설 속 인물들은 더 이상 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고, 때로는 그들이 현실의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생생한 환청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차갑고 습한 밤공기를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필사적으로 현실 감각을 되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점점 더 얇아지고 투명해져, 마치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의 두 번째 로맨스, 그 고통스러운 산물은 출판과 동시에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 누구도 감히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난해하고 불가해하다"는,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단평을 접하기도 했다. 그것은 혹평인 동시에 극찬이었으며, 내 의도,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에 대한 가장 정확한 평가였다. 무엇보다 그 난해함 덕분에, 내 은밀하고 소중했던 첫사랑의 추억, 그 백색의 환영을 누구도 함부로 파헤칠 수 없는 깊은 수렁 속에 안전하게 봉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 도착적인 안도감. 나는 그 우둔함과 불가해함에 스스로 경의를 표하며, 비로소 지긋지긋했던 쓰기의 감옥에서 한 발짝 빠져나올 수 있었다. 비평가들의 상반된 평가와 독자들의 갑론을박 속에서, 내 소설은 해석 불가능한 현대의 수수께끼처럼 문단 주변을 떠돌았다. 사람들은 내 문장 하나하나에 숨겨진 심오한 의미와 상징을 찾아내려 애썼지만, 어쩌면 그 모든 노력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내가 그 안에 교묘하게 무언가를 숨겨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혹은 그 반대로,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내 모든 것을 그 안에 무방비하게 쏟아놓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이 세상의 빛을 본 후, 나는 기묘한 종류의 해방감을 느꼈다.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혹은 지독한 열병을 앓고 난 뒤의 허탈한 가벼움이 찾아왔다. 그것은 어쩌면 과거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에 덧씌워졌던 나의 집요한 환상으로부터의 뒤늦은 해방이었을지도 모른다. 종이 위에 잉크로 각인된 나의 격렬했던 감정들은 이제 더 이상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자들의 해석과 오독 속에서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살아 숨 쉬는, 독립된 생명체가 되었다.
11월 중순을 넘어서고 있지만, 이곳 알리칸테에는 여전히 봄날 같은 온화한 바람이 분다. 계절의 흐름을 알려주는 것은 오직 모니터 화면 우측 하단에 작게 표시된 디지털 날짜뿐이다. 지중해의 깊고 푸른빛은 계절의 변덕에도 아랑곳없이 여전히 그 강렬한 생명력을 뽐내고 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바다는 마치 영겁의 시간을 품은 듯 고요하고 평화로우며,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은 잔잔한 물결 위에서 은빛으로 부서지며 반짝인다. 이곳 이국의 하늘은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하늘보다 훨씬 더 넓고 깊게 느껴진다. 그 광활함이 때로는 위안을, 때로는 막막함을 안겨준다.
매일 아침, 나는 낡은 나무 발코니로 나가 심호흡을 한다. 폐부 깊숙이 스며드는 공기 속에는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이름 모를 지중해 식물들의 향긋하고 쌉싸름한 향기가 뒤섞여 있다. 그 순간만큼은 과거의 질척이는 기억과 현재의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온전히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느낀다. 마치 인상파 화가의 팔레트 위에 형형색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알리칸테의 다채로운 풍경은, 나에게 새로운 이야기의 씨앗과 영감을 속삭이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은, 그 속삭임을 온전한 글로 옮겨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잉크가 마르지 않은 상처처럼, 글쓰기는 여전히 나에게 고통스러운 행위다.
지난달, 한가로운 오후에 동네를 산책하며 찍은 사진 몇 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을 따라 눈부시게 하얀 벽의 건물들이 나란히 서 있는 풍경, 노천 카페 테라스에 앉아 느긋하게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해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야자수들이 드리우는 이국적인 그림자가 담긴 사진들이다. 그 모든 풍경이 내게는 여전히 조금은 낯설면서도, 기이하게 친숙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 이국땅에서의 고독한 생활이 나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 익숙한 것들로부터 거리를 두는 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 나의 글쓰기에도 미묘하지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을 터였다.
요즘 나는 넷플릭스에 올라온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바다와 함께, 창밖으로 보이는 지중해를 배경 삼아 보고 있다. 스크린 속에 펼쳐지는 1980년대 서울 쌍문동 골목길의 풍경은 나에게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빛바랜 필름 같은 그 시절의 음악,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패션, 투박하지만 진심이 담긴 말투는 마치 녹슨 타임머신을 타고 아득한 과거로 되돌아간 듯한 착각을 선사한다. 특히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 동네 어귀의 작은 슈퍼마켓,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분식집의 정경은 내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겹쳐지며 아련한 감정을 자아낸다.
공교롭게도 나는 88 서울 올림픽 개막 한 달 전에 길고 지루했던 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내게 1988년은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짊어져야 했던 무거운 짐(군 복무) 중 하나를 마침내 내려놓았다는 해방감으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꽤나 행복하고 희망찼던 시절로 기억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시절 대한민국은 여전히 서슬 퍼런 군부독재의 검은 뿌리가 사회 전반을 암울하게 짓누르고 있던 모순의 시대였다. 한편으로는 88 올림픽 개최를 통한 경제 성장과 국제적 위상 상승이라는 화려한 외피를 자랑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열망과 그 열망을 짓밟는 폭압적인 정치적 억압이 첨예하게 공존하던, 이중적인 얼굴을 한 시대였다. 그 거대한 시대적 모순 속에서, 스물 몇 살의 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함께, 어렴풋하지만 강렬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드라마 속에서, 대학 입시에 번번이 낙방하던 청년 정봉이 강원도 백담사의 깊은 산 속에서 유배 중이던 전직 대통령 전두환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잠시 재생을 멈추고, 옆에 앉은 바다에게 그 시절 한국의 암울했던 시대상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민주화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던 학생들의 처절한 시위, 그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던 전투경찰들,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게 뒤덮었던 대학가의 풍경, 그리고 언론 통제와 인권 탄압의 서슬 퍼런 기억들. 내 푸르렀던 청춘의 한 조각은 분명 그 혼란스럽고 격동적인 시기와 함께했고, 그 기억의 파편들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내 안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바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그녀의 깊은 눈 속에는 낯선 나라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인간의 고통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와 공감의 빛이 조용히 어린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이곳 스페인에도 존재한다. 바다는 나에게 스페인에도 전두환과 너무도 닮은 독재자가 있었다고 말한다. 장장 39년이라는, 유럽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긴 시간 동안 철권통치를 휘둘렀던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그리고 그의 망령과 잔재는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스페인 사회와 정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진부하지만 통렬한 경구가 뇌리를 스친다. 서로 다른 대륙,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았던 두 독재자는 마치 하나의 거푸집에서 찍어낸 듯 섬뜩할 정도로 유사한 행보를 보인다.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고, 비판적인 목소리를 탄압하며,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과 공포를 서슴지 않았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바다는 바르셀로나를 주도로 하는 카탈루냐 지방 출신이다. 스페인어와는 구별되는 고유한 언어, 카탈루냐어를 사용하는,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엄연히 다른 민족이다. 프랑코는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스페인 단일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소수 민족, 특히 카탈루냐인에 대한 극심한 배척과 탄압 정책을 펼쳤다. 카탈루냐어 사용을 금지하고, 문화를 말살하려 했으며, 수많은 지식인과 독립운동가들을 투옥하고 처형했다. 그러니 바다가 스페인 중앙 정부에 대해 깊은 불신과 반감을 가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프랑코 이야기를 할 때, 그녀의 눈빛은 순간 날카롭게 변한다. 평소의 부드럽고 온화한 눈매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오랜 세월 억눌려 온 분노와 슬픔이 응축된 듯한 서늘한 광채가 서린다. 그것은 개인적인 감정을 넘어선, 한 민족이 겪어온 역사적 트라우마의 발현이었다. 바다는 자신의 할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끔찍한 탄압의 경험들을 담담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공공장소에서 카탈루냐어로 대화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던 이야기, 카탈루냐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비밀리에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가르치고 배워야 했던 이야기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거대한 역사의 무게와 폭력성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만약 우리나라가 일제로부터 독립하지 못하고 계속 식민 통치하에 놓였다면, 틀림없이 지금의 카탈루냐와 비슷한 모습이지 않았을까. 이곳 카탈루냐에서는 어디를 가든 두 개의 언어(스페인어와 카탈루냐어)가 나란히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도로 표지판, 관공서 안내문, 심지어 동네 작은 카페의 메뉴판에 이르기까지. 그 병기된 언어들은 표면적으로는 공존과 존중을 상징하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갈등과 분리 독립에 대한 깊은 열망이 묻어있다. 두 개의 언어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모습은 마치 두 개의 영혼이 하나의 몸을 위태롭게 공유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인상을 준다. 그 풍경이 낯설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 민족 역시 언어와 문화를 빼앗기고 정체성을 부정당했던 식민 지배의 쓰라린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조용히 음악을 튼다. 아이슬란드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와 독일 피아니스트 닐스 프람이 함께 작업한 'Life Story / Love and Glory'의 미니멀하고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이 텅 빈 공간을 천천히 채워나간다. 섬세하고 투명한 음률 하나하나가 방 안의 공기 분자를 진동시키며 퍼져나가면서, 나는 다시금 글쓰기라는 고독한 세계로 천천히 귀환한다. 음악의 느리고 명상적인 리듬을 따라, 내 손가락이 다시 키보드 위에서 조심스럽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다시 글을 쓴다. 오늘의 감정과 생각들을,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풍경들을, 활자라는 그릇 안에 담아내기 위해.
무엇보다 나를 놀라게 하고 혼란스럽게 만드는 이면의 진실은, 우리가 이토록 물리적으로 가까운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각과 감정 상태를 이해하고 공유하는 ‘호환성’이 그다지 보편적이거나 원활하지 못한 상태로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냉정한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여전히, 서로에게 단단히 붙어있다. 우리의 관계는 마치 서로 다른 색깔과 질감을 가진 두 종류의 물감이 하나의 캔버스 위에서 만나는 경계 지점과 같았다. 각자의 고유한 색채는 분명히 유지하면서도, 그 접점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새로운 색깔과 무늬를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때로는 그 혼합된 색이 예기치 못한 아름다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의 색을 침범하고 더럽히며 혼탁하고 불협화음적인 얼룩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것이 바로 우리의 관계였다. 분리될 수 없기에 더욱 고통스러운, 그러나 또한 그렇기에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어버린.
내면 깊숙한 곳, 심연으로부터 끊임없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있다. 그것은 때로는 지친 나를 다독이는 부드러운 위로의 말을 속삭이고, 때로는 위험한 자기기만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하는 날카로운 질책의 말을 던진다. 나는 그 내면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것이 진정 나의 본질적인 자아의 소리인지, 아니면 내가 창조해낸 또 다른 허상, 혹은 과거의 망령이 내는 메아리인지 구분하려 필사적으로 애쓴다. 하지만 그 경계는 의식하면 할수록 더욱 흐릿해져만 간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수많은 목소리들의 집합체, 끊임없이 변화하고 충돌하는 다중적인 자아의 총합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도 친밀하여, 외부에서 보기에는 마치 하나의 유기체처럼 보일 정도였다.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침대에서 잠드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습관과 취향, 심지어 무의식적인 버릇까지도 닮아갔다. 우리의 관계를 외부에서 침입하여 쪼개거나 분열시킬 만한 강력한 사회적, 역사적, 혹은 경제적 요인 또한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영향력이라는 보이지 않는 자기장 안에서, 마치 서로의 중력을 벗어날 수 없는 두 개의 행성처럼, 정해진 궤도를 따라 공전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상처 입히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에게서 멀어져 깊은 고독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코 그 궤도를 완전히 이탈하여 영원히 분리되지는 못하는, 그런 운명 공동체와 같은 관계였다.
우리의 대화는 때로는 존재의 의미나 예술의 본질과 같은 깊고 추상적인 철학적 주제로 밤새 이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장보기 목록이나 집안일 분담과 같은 지극히 사소하고 현실적인 문제들에 관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층위의 대화들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나가면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서로의 내면세계에 조금씩 더 깊숙이 침투해 들어갔다. 표면적으로는 아무런 의미 없어 보이는 일상적인 대화의 파편들 속에서도, 우리는 언어 너머의 숨겨진 의미, 서로의 눈빛과 표정, 침묵 속에 담긴 미묘한 영혼의 색채를 읽어내는 법을 암묵적으로 배워나갔다.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내밀하고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표피적인 시선으로 함부로 판단하거나 무시로 일관하는 이웃들이나 지인들에 대한 은밀하고 가벼운 조소를 서로에게 슬쩍 건네줌으로써, 일종의 공범 의식과도 같은 유대감을 확인하곤 했다.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해’라는 암묵적인 동의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둘만이 공유하는 특별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착각, 종국에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라고 정의될 수 있는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으리라는 생경하고 위험한 판단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바로 그 판단이, 현실의 간극과 불화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욱 그녀를 갈망하고 그리워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저 멀리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작은 불빛을 문득 발견한 것과 같았다. 그 불빛이 진정 나를 안전한 출구로 인도하는 희망의 빛인지, 아니면 나를 더 깊은 환상과 미망의 미로 속으로 끌어들이는 유혹의 불빛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그리고 필사적으로 그 빛을 향해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지중해의 풍경은 매 순간, 매 계절 변함없이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터키석처럼 푸른 바다, 눈부신 햇살, 부드러운 바람. 하지만 그 고요하고 완벽해 보이는 외부 풍경과는 대조적으로, 내 마음속의 풍경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격렬하게 요동치며 변화하고 있었다. 때로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치고, 때로는 모든 것이 소멸된 듯한 적막한 고요와 평화가 찾아왔다. 그 예측 불가능한 내면의 날씨 변화 속에서, 나는 여전히 길 잃은 아이처럼 내 진정한 자아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이런 복잡하고 모순적인 상황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해당하는 나의 아내, 바다는, 내가 물리적으로 머무는 이 공간에 엄연히 함께 속해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나의 내면세계, 나의 본질이라고 믿는 어떤 속성에 대해서는 애써 못 본 척하거나, 의도적으로 가볍게 치부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반항하고 충고하며 때로는 알 수 없는 두려움을 표출함으로써, 결국에는 내가 그녀에게 진심으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어떤 심리적 방어선을 구축하고야 만다. 그녀는 때로는 심하게 나를 다그치거나 몰아붙이다가도, 어느 순간 깊은 침묵으로 완강하게 항변하기도 하고,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일부러 불편하고 어색하게 만들거나, 특정 상황에 맞춰 조성된 분위기를 마치 벽지에 어두운 색 물감을 되는대로 덧칠하듯 온통 망쳐놓거나, 방 안의 공기를 흐릿하거나 검은빛으로 무겁게 채워놓기도 한다. 때로는 마지못해 지어 보이는 텅 빈 억지웃음을 보란 듯이 드러내놓고 표현함으로써, 나의 예민하거나 혹은 지극히 둔감한 시적 감수성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정확히 겨냥하여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실로 간 큰 행동을 스스로 두둔하고 나서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런 예측 불가능한 감정의 롤러코스터와 보이지 않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하는 관계 속에 적(籍)을 두고 살아가는 깊은 고통과 침울한 절망감에 휩싸여, 형체도 없이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액체 같은, 혹은 부서져 내리는 모래알 같은 비참한 물질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그녀와 나 사이의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불과 한 뼘 남짓했지만, 정신적으로는 때때로 광활한 은하계 전체만큼이나 아득하게 멀게 느껴졌다. 우리는 분명 같은 공간 안에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서로 다른 주파수의 세계를, 서로 다른 언어와 감정의 문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침묵은 때로는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주는 부드러운 담요 같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날카로운 비난보다 더 깊은 상처를 남기는 차가운 칼날처럼 나를 베어버렸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때로는 세상의 모든 근심을 잊게 하는 청량한 샘물처럼 들렸지만, 때로는 그저 텅 빈 공간을 공허하게 울리는 메아리처럼 허울뿐인 소리로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가 마주 앉아 함께했던 식탁은 한때 우리 삶의 따뜻한 중심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을 나누는 것을 넘어, 하루 동안 겪었던 사소한 이야기들, 스쳐 지나갔던 감정의 편린들, 때로는 말없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깊은 침묵까지도 나누곤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식탁은 점차 온기를 잃고 차갑게 식어갔고, 우리의 대화는 서로에게 가닿지 못하고 허공에서 흩어지는 메아리 없는 외침이 되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이 모든 모순과 고통 속에서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것은 이성적인 논리나 합리적인 판단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때로는 나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이성을 초월한 깊고 본능적인 감정이었다.
밤이 깊어갈수록, 내 머릿속의 생각들은 더욱 엉키고 복잡해져 갔다. 창백한 달빛이 창문을 통해 길게 스며들면서, 방 안의 익숙한 사물들은 낯설고 기이한 그림자를 길게 드리웠다. 그 일렁이는 어둠 속에서 나는 내 삶의 의미와 방향, 내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질, 그리고 이 풀리지 않는 관계의 실체에 대해 끊임없이 고뇌했다. 그리고 그 모든 형태 없는 고민과 질문들은 결국, 또다시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구체적인 활자로 표현되었다. 어쩌면 나의 소설은, 세상에 내놓기 위한 창작물이라기보다는, 나 자신과의 끝없는 대화, 혹은 누구에게도 들려주지 못하는 내면의 처절한 외침을 기록하는 행위였을지도 모른다.
알리칸테의 밤하늘은 내가 기억하는 서울의 뿌연 밤하늘과는 확연히 달랐다. 훨씬 더 많은 별들이, 훨씬 더 선명하고 영롱하게 밤의 캔버스를 수놓고 있었다. 나는 발코니에 서서 그 무수한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 광활한 우주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그러나 동시에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품을 수 있는 경이로운 존재인지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복잡하고 경건한 생각은 다시, 조용히 내 손가락 끝을 통해 키보드 위로 흘러나와 새로운 문장들을 탄생시켰다.
마침내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는 새벽녘, 나는 길고 고통스러웠던 밤샘 글쓰기를 마쳤다. 모니터 화면에 희미하게 비친 내 모습은 밤샘 작업으로 인해 몹시 지치고 초췌해 보였지만, 동시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끝내 성취해낸 듯한 깊은 만족감과 탈진 상태의 기묘한 평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용히 파일을 저장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신선하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그것은 또 다른 하루의 시작, 어쩌면 또 다른 글쓰기의 시작을 알리는, 희망적이면서도 동시에 두려운 신호와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