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요리를 동경했고 내 손으로 요리해보고 싶었다.
길고 긴 노동을 견디며 문득 이 일을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지 않는 요리를 사람들이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내가 사랑할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우리나라의 밭과 산, 바다에서 나는 재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보았으면 했다.
제주 오일장에서 만난 참돔, 갑오징어, 구쟁기(뿔소라), 유채와 비릅나물, 패마농, 초기(표고)... 살아 숨 쉬던 이 땅의 소산들을 식탁 위로 가져오고 싶었다.
내게 오랜 친구이자 위로였던 요리, 만지고 썰고 볶고 굽는 그 행위에서 경험하게 되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한 칸의 주방과 낡은 도마, 칼 한 자루는 내게 하나의 세계고 삶이고 젊음의 전부였다.
주방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지 시도해 볼 수 있었다.
그 자유로움 안에 디테일이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는 20대 내내 치열하게 공부하고
기나긴 시간 동안 인내하며 가장 낮은 현장에서부터 배우고
부족함을 감출 수 없는 자리에 용기 있게 나아가 부딪히고 깨지며 피드백을 받는다.
그 깊은 내면의 호수가 내게는 없었다.
내 안에 깊이가 없다면 깊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되는 것이다.
이번 팝업을 같이 한 미소, 제석 님은 저마다의 숲과 호수를 가꿔낸 사람들이었다.
그들과 함께 나눈 시간은 내게 이번 팝업이 남긴 가장 큰 배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깨끗이 내보이고 기대면 되는 것이었다.
함께 땀 흘리며 일구어낸 성취에 뿌듯하고 그 순간에 몰입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얕은 바닥에 몹시도 불안해했다.
부여에서 만난 숲과 밭의 아름다움, 마을의 활기, 서울에서 만난 사람들의 열정과 에너지를 보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나뿐이었구나.
모두가 기꺼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고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20대의 마지막에서야 군 입대를 했고 이제 전역을 한 달 앞두었다.
내가 맞이할 계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채화처럼 얕고 자유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시기는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삶에서 길게 남겨질 스케치를 이번 팝업을 통해 내게 남겼다.
이번 팝업을 준비할 수 있게 도와준 수많은 사람들, 특히 미소와 르부아 정제석 셰프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