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아침. 하늘처럼 축 가라앉은 기분이었던 그날 아침. 빗길을 달리고 있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온다. 이미 오전에 왔었던 부재중 전화 한 통. 꼭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기가 막히게 전화하는 엄마. 가끔은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 피하는 엄마 전화. 한 통은 씹었으니 두 번째까지 씹으면 걱정할 게 뻔해 아무렇지 않은 척 받은 전화. "아까도 전화했었는데." "응..." "누가 복숭아를 많이 가져와서 가져다 먹으라고. 신랑도 주고 애도 주고 너도 먹고." 그랬구나. 비싸서 내 손으로는 잘 사 먹지 못하는 복숭아를 가져가라는 엄마. "응. 지금 갈게" 속상하고 텅 빈 마음을 어떻게 귀신 같이 알고 아침부터 복숭아로 꽉 채워주려는 엄마. 그날 아침, 난 엄마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두 손 가득 먹을 것을 잔뜩 얻어왔다. 집에 오자마자 복숭아를 깎아 한 입 베어물었다. 복숭아가 이 맛이었지. 츄릅한 달콤함이 입 안에 퍼진다. 그런데 오늘은 복숭아에서 이상하게도 엄마향이 난다. 창 밖엔 여전히 비가 주록주룩 내리고 내 입에선 복숭아 침이 줄줄 흐르고 눈에선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