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제주로 떠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집이 흔들린다.
자려고 누웠다가 벌떡 일어났다. 천재지변에 취약한 나는 심장이 튀어나올 듯 두근거렸다. 두려움 능력치 상급인 남편마저도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여 나는 더 겁이 났다. 늘 괜찮다고 해주던 남편인데 3층 집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는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3층 집을 흔들고 있는 범인은 그 유명한 제주의 바람이었다.
재빨리 스마트폰을 들어 날씨를 검색했다. 이런 바람은 태풍 아니면 설명이 안될 것 같은데 그냥 바람이란다. 현재 제주시 구좌읍 풍속은 15m/s. 살면서 처음으로 온도나 강수가 아닌 풍속을 체크해봤다. 서울에서는 태풍 올 때 뉴스로만 듣던, 들어도 와닿지 않았던 그 풍속을 제주에서 처음으로 온몸으로 느꼈다.
우리가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살 곳으로 정한 집은 바닷가 마을의 3층짜리 단독주택이었다. 집은 좁고 높은 형태여서 바람에 더 취약했으리라. 다행히 집은 신축 건물이었고, 창호도 튼튼해서 창문이 깨질 것 같진 않았는데 집이 날아갈 것 같았다. 우리가 침실로 쓰는 곳은 3층이어서 흔들림이 더 크게 느껴졌다. 김걱정씨로 불리는 나는 오즈의 마법사의 한 장면처럼 집이 날아갈 것만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서 이부자리를 끌고 2층으로 내려왔다. 그 이후로 3층의 호텔 스타일 침대는 아이들의 놀이터로만 쓰였다. 나보다 걱정이 더 심한 큰 아이가 집이 흔들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당장 김포행 비행기를 타야 할 듯하여 아이들에겐 비밀로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고 다행히도 아이들은 그 후로도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이 몇 차례 있었지만 집이 흔들리는 것은 느끼지 못하였다.
제주 한 달 살기를 마무리하던 그날까지 2층 거실에서 이불을 깔고 잔 것을 아이들은 그냥 재미있어서라고 알고 있다. 처음 나를 기절초풍하게 만든 그 밤이 지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앞마당에 있던 바비큐 그릴 뚜껑이 길 건너 남의 집 앞까지 날아가 있더라. 처음에 제주 한 달 살기를 떠나올 때 2월에 하는 제주 살이는 바다를 못 즐길 것 같아 못내 아쉬웠으나, 날아간 바비큐 뚜껑을 보고 나니 태풍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겨울이라 너무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삼다도라 불리는 섬의 바람을 느꼈으니 이제는 돌이다.
한 달 살기로 짐을 쌀 때 아이들 운동화는 한 켤레는 신고 가고, 여유로 한 켤레를 챙겼다. 바닷가니 혹시 젖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여유로 챙긴 신발은 의외로 구멍이 나서 바꿔 신게 되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신발이 작아져서 새로 사주었지, 구멍이 나서 바꿔 신어 보기는 처음이었다. 집 앞의 바다는 모래사장이 아닌 현무암 바위로 이루어져 있었다. 아이들은 바다짐승처럼 네 발로 매일 그 현무암 바위를 넘어 다녔다.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은 매끈하지가 않아서 우리 개구쟁이들의 운동화, 그것도 발끝이 아닌 발등을 구멍 냈다. 너덜너덜해진 운동화를 보며 흐뭇하긴 또 처음이었다. 그만큼 자연 속에서 잘 놀고 잘 크고 있는 것이리라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자란 아이들이 안쓰러워 떠나왔는데 구멍 난 운동화가 숨구멍을 틔워주었다.
바람, 돌 그리고 여자가 많다는 삼다도 제주. 늘 밖으로 뛰어다니다 보니 바람과 돌은 온몸으로 느끼고 왔는데, 코로나19의 최정점에 머물렀던지라 사람을 많이 못 만났다. 또한 현지인도 아닌 여행자도 아닌 어중간한 한 달 살기로는 여자가 많다고 말할만한 경험이 없었다. 다만 동화책 속에서만 보던 해녀분들을 실제로 보았다. 해녀분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해야겠다.
그때 제주로 떠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그 첫 번째가 바로 제주의 바람과 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