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1)
# 읽기에 앞서 드리고 싶은 말씀
1. 내용 및 결말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2. 본 서평 1~3편은 과거 『데미안』을 완독했던 당시에 작성되었습니다.
3. 민음사 번역본 기준입니다. '압락사스'와 '아브락사스' 등 일부 표현은 책마다 상이합니다.
-22.11.26.『데미안』(민음사)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문장 하나에 홀려 『데미안』을 읽기 시작했다. 조금, 또 조금, 앞의 절반을 읽기까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남은 절반 중의 절반에 다시 몇 주가 걸렸다. 마지막 절반은 하루 만에 읽었다.
이 책은 본래 '에밀 싱클레어'라는 저자의 이름으로 출간되었으며, 소설은 싱클레어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안전하고 충실한 세계에 살던 어린 싱클레어가 세계의 양면을 보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 결국은 자신과 세계에 다다르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인 이야기다.
『데미안』은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에 씌어지고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19년에 출판되었다. 당시에 이미 작가로서 유명했던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1877-1962)는 이 작품을 가명으로 발표했다. 작품성만으로 평가받아 보고 싶어서였다. 그 결과 에밀 싱클레어라는 유령 작가가 독일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폰타네상의 수상자로 지명되었다(헤세는 이 상을 사양하였다). 그사이 눈 밝은 독문학자가 문체 분석을 통하여 『데미안』이 헤세의 작품이라고 밝혀내기도 했다.
-『데미안』(민음사), 전영애
종장에서 싱클레어는 결국 구도자가 되었다. 동경하던 막스 데미안과 하나가 되었다. 죽었는지 어쨌는지, 옮긴이의 해석까지 마저 읽었지만 당장은 정확히 이해되지 않았다. 다만 싱클레어는 완전히 자신이 되었다. 고통 속에서도 자신에게 이르는 길을 걸었고, 데미안을 통해 에바 부인의 키스를 전해 받음으로써 마침내 도달했다.
데미안은 죽은 것일까? 그 위대하고, 단단하고, 빛나던 청년은 정말 총알 하나에 모든 것을 잃은 것인가. 물론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안에 남았으므로, 싱클레어가 살아남았다면 그도 살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길의 추구, 오솔길의 암시다.” - 9p
싱클레어가 그랬듯, 나는 사는 동안 고통 속에 홀로 고찰했다. 그리고 알을 깨고 나와 답을 찾았다. 결국 세상은 ‘나’였고, 내가 이 세상의 유일한 의미이며 중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헤세는 ‘나에게 이르는 길’이라는 표현으로 집필의 목적을 그대로 드러냈고, 옮긴이는 이를 해설하여, 내가 나의 문장으로 위와 같은 결론을 표현할 수 없게 했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 말고는 더욱 진실되고 새로운 문장으로 감상을 표현할 수 없도록 했다.
우리 모두는 ‘나에게 이르는 길’을 찾아 헤맨다. 그중 길 끝에 다다른 몇몇은 구도자가 된다. 헤세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존재들인데, 그가 겪었던 상실의 시대에서 이 소중한 개인들은 총알 하나에 무더기로 죽어갔다. 그리 쉽게 지워질 소중함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소중한가, 하는 의문을 품은 헤세는 『데미안』을 통해 투쟁하는 새의 이야기를 남겼다.
(2)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