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서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는 것은 사실 어떤 선택을 해도 득과 실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이것을 해도 득과 실이 있고, 저것을 해도 이익과 손실이 있다. 그 정도가 비슷하다. 만약 이것을 했을 때 득이 훨씬 크다면 우리는 이미 그것을 했을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이지 않는다. 저것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결정이 고민인 이유는 그 이익의 정도가 50.1대 49.9일 때 나타난다. 비슷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어떤 선택을 해도 무방하다. 기로에 서면 그냥 가면 된다.
-이하영, 『인생의 연금술』, p.80
글의 소제목을 읽는 순간, 눈이 커졌다. 도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궁금했다.
하루에 내리는 선택이 35,000번이나 된다고 한다. 선택이 너무 많아 삶이 피곤해질 만도 하다. 그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우리는 몇몇 앞에서 멈춰 선다.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며 시간만 흘러간다. 그 선택이 중요한 것처럼 느껴질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런 '생각의 기로'에 멈춰 서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자리에서 흔들린다. 장고 끝에 악수를 둔다고 길게 고민하여 선택한 이후에도 후회가 남았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왜 나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그렇게 흔들렸는지를.
사실은, 너무도 단순했다. 그런데도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선택이든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선택은 결과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고 내 인식의 저울로는 잴 수 없는 미량의 차이만 존재했던 것이다. 결과에 대한 내 해석이 차이의 크기를 만든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걸 피하려고 일부러 대충 결정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결정 피로를 느끼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더 좋은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정답인 선택’이란 건 없다고 한다. 선택 이후에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느냐에 따라 그 선택은 ‘옳은 선택’이 된다.
내일도 나는 여러 갈래의 길 앞에 설 것이다.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할지가 아니라, ‘이 선택이 내 삶의 기준에 맞는가’를 기준 삼아 바라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이 쉽지 않을 때는, 아마도 결과의 차이가 크지 않거나, 혹은 내 경험치로는 알 수 없는 처음 마주하는 일일 것이다.
그럴 땐, 내가 모르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나 자신을 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다.
나는 그런 마음의 크기를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