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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신발을 신고, 현실이라는 대지에 서라

그대 자신을 써라. 그게 전부다

by 고스란

대단한 것을 쓰려는 마음은

당신의 생각을 현실에서 떠나게 한다.

당신이 소유한 가장 좋은 신발을 신되,

현실이라는 대지에 발을 딛고 있어야

그 글은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당신이 배워서 제대로 알고 있고

해봐서 몸이 기억하는 그것을 써라.

결코 당신이 가진 것을 얕잡아보지 말라.

누구보다 가치 있는 당신의 삶이니까.


<글은 어떻게 삶이 되는가>, 김종원, 서사원, p.155





요 며칠 글을 쓰지 못했다.

글쓰기보다 더한 것이 머리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을 쓰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핑계를 댄다고 할 수 있지만 뭐 하나 골똘하게 생각하면 가끔 일상도 제쳐두고 그것만 생각한다. 생각만 하고 별 거 하는 것도 없는데도 가끔 그렇다.


그러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졌다.

올해 있어 가장 잘한 일은 글을 꾸준히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사흘에 한두 번 어떤 형태로든 글을 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 쓰는 것이 만만한 건 절대 아니다.

큰 기대 없이 글을 쓰다가 생각지도 못한 글이 써져서 기분이 좋을 때가 있지만 그건 아주아주 가끔이다.

평가를 받는 글쓰기를 할 나이도 아니고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스스로 내 글에 대해 생각을 하면 이걸 다른 사람이 보는 곳에 올려도 되나 싶을 때가 많다.

차마 올리지 못하고 서랍에 두고 묵혀버리는 글까지 생각하면 글쓰기는 대단한 용기가 일어야 하는 일만 같다.


다락방에서 짐을 꺼내어 내려오는 길 갑자기 책장에 눈이 꽂히고 손이 가길래 책을 꺼내왔다.

전에 한 번은 쭉 읽은 책인데 새삼 책을 들어 아무 쪽이나 폈다.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글의 순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어디를 펴든 상관이 없다.

제목으로 쓴 부분이 펼쳐진 글의 소제목이다.


그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을 멈추고 쭉 읽어 내렸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내가 잊고 있던 것들을 따듯한 목소리로 말해주었다.


글을 읽고 조금은 단단한 마음이 생겼다.

해봐서 몸이 기억하는 그것, 그 생각을 얕잡아 보지 말라니.

누구보다 가치 있다니.


어쩌면 남들에게는 형편없을 글을 오늘도 쓸 수 있는 이유는 내 삶이 진짜이기 때문이다.

내 현실이 대단하지 않아도 나에겐 온 세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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