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행복한가
쇼펜하우어는 가치의 기준을 타인에게서 구하지 말고 자신에게서 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고 인격에 부합하는 일에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
행복은 자신만의 탁월한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는 데 있다.
우리는 끊임없이 탐구해 세계와 자신에 대해 알아 가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과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아야만 자신만의 행복의 방향이 비로소 정해진다. 능력과 욕구를 일치시키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다. 교육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고 본성을 바꾸도록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처럼 누구나 타고난 욕망과 능력이 무엇인지 오랜 성찰을 통해 찾아낸 다음, 그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일이 행복으로 가는 길이 된다.
행복이란 자신의 개성과 소질에 맞도록 노력함으로써 다다를 수 있는 만족감이다.
어떻게 해야 인생이 더욱 행복해질지 고민해 보라.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강용수, 유노북스, p.74
많은 사람들은 며칠만이라도 여유 있는 시간이 있으면 국내로 해외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나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못 간 것일 수도 있지만 가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갔을 것이다. 그럼 휴가기간을 어떻게 보냈을까? 나름 행복하게 보내는 중이다. 쇼펜하우어의 말에 따르면 ‘나름’이라는 말을 붙일 필요가 없다. 행복이란 자기 개성에 따른 만족감이기 때문이다.
감사하게도 나는 나의 자율성을 보장받는 삶을 살아왔다. 어렸을 때부터 딱히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지키며 살 필요가 없었다. 기대는 받았지만 공부하라는 말을 듣지 않았으며 공부의 결과로 혼난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최대치의 능력을 끌어낼 필요가 없어서 일반적인 기준에는 못 미치는 결과를 얻었을 수도 있다. 때문에 수능 결과를 보고 엄마께서 며칠 드러누으셨지만 그걸로 끝이다. 그래도 확실한 건 행복했고 행복하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 다 잘 풀려서가 아니라 때로 고난과 역경을 만나고 피눈물 나는 후회를 할지라도 그저 나를 돌아볼 일로 남은 것이다. 누구를 원망할 수가 없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내가 타고난 욕망과 능력이 무엇인지 경험하며 배우고 성찰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산 덕분이다.
법에 저촉되지 않는 선에서 남과의 약속, 돈을 받으면서 하는 일이 아닌 다음에야 본성 그대로 산다. 아직도 내 취향이 뭔지 확실하지 않지만 끌리지 않으면 하지 않고 해보고 싶으면 한다. 그래서 때로 집안은 엉망인데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혼자 오케스트라 공연을 보고, 매주 금요일 저녁 왕복 세 시간을 운전해 강남에서 하는 수업에 참여한다. 매일 11시면 노트북에 앉아 이것저것을 한다.
고2인 아들도 본인이 선택한 학원 하나 스케줄에 맞춰 차로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는 일만 하면 그 이후에 뭘 하든 내버려 둔다. 방치가 아니라 나도 하고 싶은 대로 살아 행복하니 그냥 두는 것이다. 공부보다 운동, 요리, 음악 듣고 노래하기를 좋아하고 잘하는 아들에게 능력이나 욕구에 맞지 않는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덕분에 주방장은 아들이고 나는 보조다. 아빠와 함께 헬스장에 등록해서 2시간씩 운동하고 저녁엔 축구를 하고 온다. 나는 들리지도 않은 영어랩을 외워 부른다. 내 기준에서 잘하길 바라는 걸 강요했다면 아들은 요리도 운동도 노래도 잘 못하는 그저 그런 수준으로 공부하며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남편이라고 다르게 사는 건 아니다. 퇴근하면 씻고 저녁잠을 자든 아들과 운동을 하든 편히 보낸 후 자기가 좋아하는 밤과 새벽을 누린다. 우리가 잠들 때 혼자 맥주 한두 캔을 따서 마시며 좋아하는 영화를 본다.
가족 모두 밖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한다. 그리고 남는 모든 시간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며 산다. 그렇다고 사이가 멀거나 하지도 않다. 하고 싶은 것으로 많은 부분을 채운 우리는 다툴일이 별로 없다. 서로를 위해 가끔 끌리지 않는 집안일도 해야하지만 기본 황금률에 따른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강요당하기 싫으니 남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나에게 좋은 것이 남에게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한다.'
좋아하고 끌리는 것을 하면 공부도 노력도 하게 된다.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 노력은 강요에 의한 노력보다 덜 힘들다. 나쁜 결과로 돌아와도 충격이 덜하다.
적어도 난 이렇게 사는 게 더 좋다.
다른 이의 행복이 질투의 대상이 아니다.
그도 옳고 나도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