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게 되면 내가 무얼 잘하는지가 보인다. 내가 무얼 잘하는지 보이면 나 자신을 신뢰하기 시작한다. 스스로를 신뢰할 때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왜 원하는지 알고,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알면 그때부터 진짜 삻이 시작된다. 진심으로 나를 알고 싶다면 매일 글을 쓰고, 책을 쓰면 도움이 된다. 그것이 생각이든, 삶이든, 어떤 형태로든.
<행동력 수업>, 오현호, Skymind, p.194
"뭐 먹을래?"
가장 좋아하지만 가장 난감한 질문이다.
삶의 1순위는 잠이요, 삶의 2순위는 먹는 거다. 막상 쓰고 보니 참으로 본능에 가까운 삶을 산다.
살짝 부끄러워지려다 바로 괜찮아졌다. 행복의 문턱이 낮아 쉽게 행복지기도 한다.
잠은 언제, 어떻게 잘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할 수 있다.
그런가? 눕자마자 곧 잠드는 아들을 보며 부러워한 적도 있다.
그러고 보니 잠을 잘 자는 것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다.
매일 내가 맘 편히 누워 '자고 싶은 만큼' 자는 건 아니다. 평소엔 약간 모자란 듯 잔다.
잠에 대해서 내가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걸 알았다.
삶의 1순위라고 호기롭게 문장을 써놓고는 생각해보지 못했다니.
감사한 마음이 가슴을 채운다.
늘 당연하듯 하는 것은 빼앗긴 후에야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가끔 고민과 걱정, 때로 카페인으로 잠을 제대로 못 잘 때 얼마나 괴로워하며 뒤척였는지 생각났다.
일상에서 후회되는 일이 있으면 혼자 있는 순간에 상황을 재생하여 혼잣말을 하고 몇 번을 되뇌어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힌다. 때로는 그럴 수밖에 없다며 이유를 대고 그래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며 다그치고 속상하다며 넋두리를 한다.
잠드는 순간까지 몇 번이나 생각했기에 상황만 더 생생해질 뿐이다. 침대에 누워 토닥토닥한다.
"아, 몰라." 잠을 청한다.
나에게 잠이란 하루의 쉼이자 보호막이다. 쏙 숨어서 나의 불편함을 모두 막아준다고 여겼다.
요즘에서야 잠이란 것이 다양한 역할을 하며 하루를 재구성하여 나의 삶을 직조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자기 전에 가장 좋은 생각을 하는 게 더 좋다고 한다.
아직도 습관이 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더 생각하는 거다. '그럼에도 감사한 건'
감사까지 가지 못했다면 '다행인 건'.
문득 흔히 말하는 다행히 어떤 뜻으로 설명되는지 궁금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다.
다행(多幸) '많을 다'에 '행복, 운을 뜻하는 행'이다.
'뜻밖에 일이 잘되어 운이 좋음'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행복이 복된 운이라면 다행은 '뜻밖의 일'마저 잘된 운이다.
게다가 '多(많을 다)'자까지 떡하니 놓여있다.
물론 행복은 만족할 만큼, 충분한 운이라 더 크고 가득한 느낌이 있긴 하다.
자잘하면 어떠한가 많은면 되지.
한입 가득 넉넉하게 만끽할 순 없지만 소소하게 계속 얻다 보면 결국 총량은 같아지지 않을까?
우리 삶에서 조삼모사를 실현하면 되지 않겠는가.
지금 커다란 열 개 대신 가끔 하나씩 채우기.
열 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매 번 불행하다고 여기기보다 하나씩 때론 둘씩 운이 좋으면 셋씩 그렇게 몇 번을 채우는 거다.
행복이 지연될 수 있지만 가는 과정이 즐거울 수 있다.
좋아하는 걸 말하려다 행복까지 갔다.
역시 글은 써봐야 안다. 시작은 내가 하지만 끝은 글이 낸다.
책을 펼쳐 들고 인상 깊었던 문장에서 시작했는데 이야기는 전혀 다르게 흘렀다.
"작은 것도 귀하게 여기는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술을 '음미하기'라고 한다.
음미하기란 소소한 현재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마음의 습관을 의미한다."
최인철, <굿 라이브>
이 사소함이 삶의 기술까지 된다니 놀랍다.
잠시 멈춰 선다.
곧은 길보다 때론 굽은 길이 더 재미있다. 굳이 빨리 쓸 필요 없는 글은 생각이 흐르는대로 머무는 대로 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