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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쉴 만큼 쉬었다

100편 발행의 문턱을 넘고

by 고스란

한여름, 성장의 재미에 흠뻑 취해 달렸다. 하지만 한 달 뒤, 나는 <모던 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물건처럼 무력하게 밀려오는 일들에 짓눌리고 있었다. 열정은 어디로 사라지고, 무기력함만이 나를 감싸고돌았다.


그 후로 한 달, 그 전의 열정은 여유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다시 바쁜 일상이 시작되자 할 것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결국 밀려오는 일들의 속도를 이기지 못했다. 내가 멈췄다고 해서 시간이 멈추는 것도 아니고 일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일은 일대로, 내가 하고 싶어서 벌려놓은 것들은 벌려놓은 것대로 나를 짓누르는 산이 되어가고 있었다.


출근해서 하는 일은 늘 그렇듯 어떻게든 해낸다. 정말 다행히 나를 흔들 만큼의 큰 변수가 없기에 계획한 대로 하던 일을 하거나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가 있었다. 다만 아침, 오후, 저녁, 밤 시간 모두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별로 없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글을 한 시간씩 썼는데 그마저도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세 종류의 독서 모임과 서평으로 써야 하는 책까지 종류별로 서너 가지가 쌓였다. 공부하려고 신청해 놓은 연수도 밀려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화요일이면 여전히 운동을 하긴 하지만 10월 말쯤 잡혀 있는 마라톤은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달리기는커녕 산책도 매일 하지 않는다. 환절기라 다시 돋은 각종 알레르기와 아토피 증상에 밀가루도 줄이고 음식도 가려 먹어야 하는데 마음대로 먹고는 그 결과를 고스란히 받아 들고 겪고 있다.

한심하리만큼 엉망진창이 된 내 모습을 보며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어리석은 모습으로 무엇을 얻으려 했을까. 어쩌면 많은 분들도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의 일상과 마음이 흐트러진 것은 단지 물리적인 일의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의 일상의 흐트러짐은 단지 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최근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연락을 소홀히 하며 마음 불편하게 보내고 있다. 분명히 종종 생각하고 궁금해하고 걱정도 했는데 정작 표현하지 않았기에 서운함이 쌓였다. 누구에게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전적으로 내 잘못이었다. 지금까지 해본 적 없이 읽지 않는 카톡을 보내고 있었다. 다른 일들이 손에 안 잡히는 가장 큰 이유일 수도 있다.

혼자 생각하다 말다 괜히 잘 보지도 않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축내다가 노트북을 열고 글을 썼다. 일기와 같은 글이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데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이제 충분히 쉬었고, 충분히 고민했다. 조급해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기로 결심했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어도 괜찮고, 화려한 열정으로 가득 차지 않아도 좋다.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단 하루씩만 잘 살아내자는 마음으로 제자리에서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갈 참이다. 결국 내가 벌인 일이니, 그 즐거움과 성장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싶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포기도 하지 말고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면 된다.


1일 1독 1필 1행. 어제보다 나은 내가 되기 위해 하루씩만 잘 살아보자. 열정으로 가득 차지 않아도 좋고 새롭지 않아도 좋다. 해야 할 일만 놓치지 말고, 하고 싶었던 이유를 되새기며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그 첫 번째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지난번 100번째 글을 발행했다.

다시 새로운 챕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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