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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라서 더 잘할 수 있는 일은

자율성을 가지고 삶을 더 잘 가꾸어 나가는 것

by 고스란

흙에서 시작한 사람은 뿌리가 깊다.

금에서 시작한 사람은 뿌리를 뻗을 수가 없다. 금은 너무 단단하기 때문이다.

흙에서 시작해서 부를 쌓자. 그래야 부가 튼튼하게 자란다.

마땅히 가져야할 부는 이런 건강한 모습이어야 한다.

흙은 우리에게 다양한 선물과 축복을 준다.

흙수저라고 기죽지 말자. 금보다 흙이다.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 고명환, 라곰, p.17




나는 스스로를 '흙수저'라고 여기지 않는다. 현재 내가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나의 롤모델로 삼을 수 있는 축복을 누렸기에, 경제적인 상황이나 내 처지를 크게 탓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흔히 말하는 장래희망과 꿈을 이루어 나가는 동시에, 여전히 그 꿈을 향해 나아가며 행복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것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오히려 '흙수저'이기에 '자율성'을 가지고 삶을 더 잘 가꾸어 나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최근 지나영 교수님께서 올리신 글에서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 교수님께서는 자율성을 '자기 결정성 이론'의 세 가지 핵심 요소(자율성, 유능감, 관계성) 중 하나로 설명하시며, 아이의 내면에서부터 '동기(Motivation)'가 나오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강조하셨다. 그 설명을 들으며 나는 이 '자발성' 덕분에 지금처럼 배우고 성장하는 것을 즐기며 꿈꾸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발성이란,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스스로 선택한 행동이며,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상태를 말한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Demian)』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 바로 이 자발성과 연결되어 마음속에 떠올랐다. "All I really wanted was to try to live the life that was spontaneously welling up within me. Why was that so difficult?"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내 안에서 자발적으로 솟구쳐 나오는 삶을 살아보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


주어진 것이 많으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 자연스럽게 자율성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께서 마련해 주신 최소한의 안전 울타리 안에서라면 무엇이든 자유롭게 시도할 수 있었다. 물론, 열심히 하지 않을 선택도 있었기에 때로는 성취가 크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장하며 줄곧 자유로움을 느꼈다. 항상 성공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떻든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만 했다. 이 과정은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귀한 기회가 되었다.


처음부터 나 자신을 온전히 알지는 못했지만, 이처럼 외부의 강요 없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겪을 수 있었다. 다양한 드라마에서 볼 수 있듯이, 주어진 것이 많은 경우 오히려 기대치가 높아지고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상황을 흔히 마주하게 된다. 그렇기에 나는 '흙수저'라는 배경이 오히려 내가 이처럼 중요한 자율성을 더 잘 키워나갈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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