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꾸옥으로 떠난 어린 숙녀들
새벽 1시경 베트남행 비행기로 떠나는 천사(손녀의 태명)의 모습이 카톡방으로 속속 올라왔다. 의젓하게 본인의 캐리어를 밀고 가는 모습에 입꼬리가 끝도 없이 올라간다. 발걸음도 씩씩하게 저리도 좋을까. 아내는 집에 두고 딸들만 데리고 국내가 아닌 베트남의 리조트로 가기 위해 네 명의 아빠들이 공항에 떴다. 보기만 해도 듬직하니 네 명의 아들들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40을 바라보는 아들에게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깝게 지내는 절친 다섯 명이 있다. 틈만 나면 모여서 공부도 함께 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그해 겨울에는 군밤 장사도 했다. 아들은 첫 아르바이트 선물이라며 생각지도 못한 따스한 재킷과 티를 사줬다. 유행이 지나버려 입지 않는 옷이지만 처음으로 사준 선물이라 지금도 애지중지 끌어안고 있다.
대학생이 되면서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함께 예식장 홀에서 알바도 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성실한 친구들이다. 그런 친구들이 모두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취업을 했다. 주말이면 모여 술잔을 기울이다 30대 전후로 약속이나 한 듯 모두 결혼을 했다. 그러더니 차례대로 네 명의 친구는 첫딸을 낳고 한 명만 아들을 낳고 또 한 친구는 둘째로 아들을 낳았다.
그 후로는 육아에 지친 아내들에게 휴가라도 주듯이 분유통을 싸 들고 아가들만 데리고 풀빌라나 키즈카페가 있는 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혼자서 가면 부담스럽지만 다섯 명이면 아이들을 위해서 그리 크게 부담되지 않는 금액이다. 어려서부터 언니, 동생, 친구가 된 아이들은 그 여운이라도 있는지 그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종알종알 쏟아내곤 한다. 우리 천사가 7살이니 그런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국내의 여러 곳을 다녔으니 이번에는 색다른 풍경들을 찾아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자라면 학교 수업도 빠져야 하고 각자 학원 일정까지 있다 보면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천사는 유치원 수업을 마치고 양양에서 출발하여 저녁 7시에 우리 집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오는 천사를 위해 좋아하는 오므라이스와 콩나물을 무치고 국도 끓였다. 천사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콩나물이라 쌀뜨물을 넣고 육수를 내어 끓였더니 맛있다며 콩나물국을 그릇째 들고 마셨다. 공항에 가기 위해 잠시 들른 길이지만 늘 아쉽기만 하다. 그래도 엄마 없이 국내도 아닌 낯선 땅을 아빠와 가겠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그런 천사가 얼마 전에는 황당한 에피소드를 생산하여 한바탕 웃은 적이 있다. 유치원에서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혹시 천사가 물파스 알레르기가 있는지 확인하는 내용이었다. 그건 아니라고 했더니 천사가 다친 적은 없다고 해서 벌레가 물은 줄 알고 물파스를 발라주었다는 것이다. 그랬는데도 피부색이 누레지고 계속 아프다고 하여 닦아내고 다른 물파스로 바르고 또 바르고 네 번이나 발랐다는 것이다.
아들은 퇴근길에 유치원에 들러 천사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아뿔싸. 요 깜찍한 공주님. 어이없는 이야기에 뒤로 넘어갈 뻔. 천사의 말에 따르면 친구의 상처에 붙인 밴드가 너무 예뻐서 본인도 붙이고 싶었단다. 그럼 어떻게 저 밴드를 가질 수 있을까. 궁리 끝에 매트에 있는 힘껏 이마를 박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생긴 상처에 물파스를 발랐으니 얼마나 아프고 쓰렸을까.
창피한 것은 아는지 차마 일부러 박았다고는 못하고 그 아픈 파스를 바르고 또 발라도 참았다니 이게 말이 되냐고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천사를 보며 부탁했다. 할머니가 예쁜 밴드 얼마든지 사 줄 테니 앞으로 그런 짓은 제발 하지 말아 달라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씩 웃는 천사. 영어 유치원에 입학한 지 두 달 만에 레벨업으로 월반까지 했으면서 그런 머리 하고는 다른 걸까. 어디서 고런 생각이 나왔는지 7살 꼬마 숙녀의 어이없는 짓에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다.
다섯 명 중에 한 친구는 갑자기 일이 있어 함께 하지 못했지만, 여행 내내 이국적인 풍경과 함께 올라오는 사진들에 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저 미소가 떠날 줄 모른다. 손녀 바보가 따로 없다.
푸꾸옥의 리조트로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떠난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대관람차를 타고 아쿠아리움을 가고 사파리와 수영장으로 오가며 먹고 또 먹고 아빠와의 추억들로 꽉 채우고 돌아왔다. 여행하는 동안 자매들처럼 웃고 떠들며 귀여운 포즈들을 선물해 주기도 한 꼬마 숙녀들. 지금은 어려서 예전처럼 아빠하고 떠난 평범한 여행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성인이 되면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궁금해진다.
집집마다 아이가 하나 아니면 둘이기에 금지옥엽 귀한 아이들로 키우기 마련이다. 그러기에 여러 형제와 부대끼며 자라는 것보다는 양보와 기다림, 인내 등을 배우는 데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하여 이렇게 어려서부터 자주 만나며 어울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부분들을 알아가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천사는 하루에 만보씩을 걸어 힘이 들어도 떼쓰거나 울지도 않고 잘 놀다 왔다며 흡족해하는 아들이다.
아빠들 역시 20여 년 동안 지켜온 우정을 다지며 타국 땅에서 딸들과 함께하는 그 순간들이 한 장의 달력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앞으로도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란다. 그 우정 또한 오래도록 빛이 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