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1세기의 무한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도 최근에 가장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단연 대학입시다. 이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의 '2026학년도 대입전형 시행계획'에 따라 2026학년도 수시 원서접수가 9월 8~12일로 끝났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지원 대학과 과에 따라 면접과 실기, 논술, 정시 등까지 치러야 한다.
대학을 가기 위해 그들은 지금까지 어떤 마음으로 달려왔을까. 무슨 자신감과 승부욕으로 버텨왔을지 모르지만, 그 길 위에서 함께 한 노력에 대하여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나에게는 "승부욕"이라 하면 할 말이 많은 3명의 손주가 있다. 아들이 아닌 며느리를 닮은 7세의 손녀와 딸이 낳은 5학년 윤이와 3학년인 훈이다. 손녀는 아들과 며느리의 직장 문제로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와는 먼 거리에 있는 강원도 양양에 살고 있다. 하여 손녀는 돌봐줄 수 없지만 윤이와 훈이는 큰길 건너에 살며 나의 돌봄을 받고 있다. 손녀와는 매일 카톡방에서 만나고, 윤이와 훈이는 내 품에서 온갖 이야기들을 피워내며 나를 웃고 울게 한다.
얼마 전에 양양에 있는 손녀의 사진이 올라왔다. 깜짝 놀라 전화를 했다. 돌아온 대답은 줄넘기를 너무 많이 해서 무릎 힘줄에 염증이 생겨 치료 중이라고 한다. 아니, 7살 어린아이가 줄넘기를 얼마나 했길래 치료까지 받는지 어이가 없었다. 알고 보니 나흘 동안 6시부터 8시까지 쉬지도 않고 줄넘기를 했다고 한다. 연약한 손녀의 승부욕이 이런 대 참사를 몰고 온 것이다. 오빠들은 무서워서 높이 못 타는 그네를 거침없이 구르며 하늘과 맞닿을 지경이고, 구름사다리처럼 높이 올라가는 험한 놀이기구도 성큼성큼 무서운 줄 모르고 끝까지 올라간다. 누구도 못 말리는 손녀다.
이처럼 좋아하는 일이라면 끝장을 볼 때까지 하여 걸핏하면 몸살이 나서 병원에 간다. 욕심과 달리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목이 붓고 열이 나서 고생하기도 한다. 그건 말린다고 될 일이 아니다. 그런 성격 때문인지 미리 가르친 적 없어도 4세에 한글을 익히고, 7세가 되니 영어도 곧잘 한다. 요즘은 책 읽기에 푹 빠져 매일 책 읽는 사진이 올라온다. 이 아이는 커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은근히 승부욕이 생긴다.
지난주에는 또 윤이 때문에 한바탕 울음바다가 되었다. 학원 갈 시간은 다가오는데 일어날 기미는 없고 속이 탔다. 아무래도 문제가 제 뜻대로 풀리지 않나 보다. 지난번처럼 고민하다 해결해 내겠지 싶어 모임에 나가기 위해 저녁 준비를 서둘렀다. 10분 전, 5분 전, 정시가 되어도 꼼짝을 하지 않는다. 애가 탄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잘 안 풀리나 보구나, 학원 가서 선생님 도움을 받아보는 건 어떻겠니?"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닭 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왜 이 문제를 못 푸는지 인정할 수 없다며 대성통곡을 했다.
이미 학원 갈 시간은 지나버렸는데도 다 풀기 전에는 갈 수 없다고 버티는데 난감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경시 대회 문제가 나오면 머리를 맞대고 같이 풀기도 했지만, 문제도 만만치 않고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까지 빼앗겨 버려 하루가 엉망이 되었다. 딸도 늦게 퇴근하는 날이면 도와줄 시간이 없고, 사위는 회사일과 본인 공부만으로도 밤을 지새우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보낸 수학 학원인데 경시 대회 문제가 안 풀릴 때마다 저리 울고불고 난리다.
모임 시간은 다가오고 윤이는 문제집 위에 엎어져서 울고 있으니 숨을 가다듬고 사정조로 말했다. "어제부터 말했지만, 할머니 오늘 모임 있어서 가야 할 시간인데 네가 그러고 있으니 갈 수가 없다. 지금이라도 가서 선생님 도움을 받으면 어떻겠니?" 속에서는 천불이 나도 소위 상담을 배웠다는 사람이니 끓어오르는 감정을 꾹꾹 누르고 살살 달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잠시 잠깐 챗GPT의 도움을 받아 볼까도 했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노력해 보고 못 푼 문제들에 대해서는 선생님의 도움을 받는 것이 윤이의 앞날을 위해서 맞다고 생각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이런 승부욕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건강하게 자라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기에 당분간은 참으며 기다려 주려 한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고, 지난번처럼 "경시 대회 문제 이제 어렵지 않네" 하며 웃을 날이 더 자주 오지 않을까.
그럼 미소 천사 훈이는 어떨까.
방학 때마다 수학 복습 문제집을 풀었다. 연산에 약한 훈이는 매번 풀어도 비가 내리는가 하면 문제를 빼먹는 일도 다반사였다. 더하기 빼기가 안 되니 곱셈이 될 리가 없다. 목이 쉬도록 떠들어도 훈이 말대로 계속 비가 내렸다. 천진난만한 훈이와는 달리 이 할머니는 기진맥진하여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훈아, 도대체 언제나 제대로 할 수 있겠니." 그러나 반복의 힘은 위대한지 3학년이 되니 내리던 비가 잠잠해져 갔다.
어쩌다 학교에서 100점을 받아오는 날이면 아낌없이 칭찬을 해주었다. 하지만 쉬운 문제임에도 2~3개씩 틀려오는 날도 있다. 왜 그런지 물으면 언제나 해맑은 훈이. 깜박 실수했다며 내 품에 안겨온다. 어이가 없지만 이도 이 아이의 과정이라 생각하기에 다음번에는 더 잘하자며 꼭 안아주곤 한다. 그런 일들을 집에 와서 말하면 남편은 그런 아이가 크면 더 잘할 거라는 말에 기운이 쏙 빠진다. 급변하는 요즘 시대에 합당한 말일까.
제각각인 세 명의 손주를 바라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승부욕이란 아이들이 꿈꾸는 목표를 향해 가면서 필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때로는 과해도 해가 될 수 있으니 지금도 충분하다며 다독여주고, 설령 못하더라도 다그치기보다는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다며 용기를 주려 한다. 돌아보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생각처럼 안 되는 일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좌절하고 주저앉았다면 여기까지 올 수 없었다. 고비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일으켜 세웠고, 기어이 해내겠다는 승부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손주들에게도 그런 자신감과 건강한 승부욕이 함께 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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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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