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여행 1일차
날이 흐릿하더니 출발과 함께 비가 쏟아졌다. 정처 없이 떠나 숙소가 있으면 머물고, 맛집을 찾아 식사하면 좋겠지만 명절 연휴로 숙소는 동이 난 지 오래다. 어쩔 수 없이 첫날의 행선지는 아들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소금산 출렁다리로 정했다. 원주에 있는 소금산은 고도 343m의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빼어나고, 경관이 금강산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의 소금강산을 줄여서 소금산'이라 했다고 한다.
이 소금산의 두 봉오리를 연결하는 길이 200m, 높이 100m, 폭 1.5m의 출렁다리는 원주를 대표하는 관광시설로 2018년 1월 11일 무료 개장하여 2018년 7월 16일부터 유료화되었다. 나는 이 기간에 무료입장하여 다녀온 적이 있지만 이후 간현관광지에 자리한 케이블카, 출렁다리, 산 정상 절벽 아래 만든 잔도, 스카이타워, 울렁 다리, 에스컬레이터 등을 하나로 묶어 '소금산 그랜드밸리'로 조성했다고 하여 다시 가보기로 했다. (안내 책자 참조)
소금산 케이블카 공영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2025년 2월 25일에 개통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나는 긴 줄을 서고 남편은 발권기에서 입장권을 구매했다. 입장권은 성인의 경우 18,000원으로 명절 연휴를 맞이하여 400명 가까이 되는 인파가 몰려 어수선했지만, 케이블카는 10인승으로 22대가 상부 소금산 출렁다리까지 972m를 지속적으로 운행하여 30분 만에 탈 수 있었다. 이 입장권은 통합권으로 케이블카와 출렁다리뿐만 아니라 중간에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든 계속 걸어서 울렁 다리를 건너 에스컬레이터를 타든 상관없이 구매해야 한다. 편도가 없다는 이야기다. 또한 케이블카를 타지 않고 걸어서 올라가더라도 만 원의 입장료를 지급해야 한다. (월요일 휴무)
소금산의 절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래로는 섬강이 흐르는 모습을 보며 케이블카에서 내려 조금만 올라가면 원주를 대표하는 관광시설로 자리매김한 산학 보행교인 출렁다리를 만날 수 있다. 바람은 불고 어찌나 흔들리는지 고소공포증이 있다면 두렵겠지만 내겐 짜릿한 순간이었다. 마침, 비가 그쳤기에 서둘러 출렁다리를 지나 올라가니 하늘정원이 나왔다. 바로 옆의 덱(데크) 길을 걸어도 되고, 하늘정원 길을 따라가다 보면 합쳐지기에 어느 길을 가든 상관없다. 다만 이 하늘정원을 기점으로 울렁 다리를 지나 끝까지 걸어가지 않을 거라면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야 한다. 거동이 불편하거나 아이가 있는 경우 돌아가시는 분들도 꽤 있었다.
우리는 하늘정원 길을 따라 걷다가 소금산의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길이 700m의 덱(데크) 산책로를 걸었다. 시원한 가을 날씨였다면 좋았을 텐데 비가 그친 후 후덥지근하여 걷는 이들의 티셔츠가 땀에 젖어 들고 숨이 가빴다.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나 아이들의 경우 신중한 선택이 요구되는 길이었다. 이어 지상 200m 높이의 절벽에 조성된 360m 길이의 소금 잔도를 걸었다. 이때 몇 해 전에 다녀온 중국의 장가게를 떠올리며 또다시 아찔한 긴장감을 맛볼 수 있었다.
땀에 흠뻑 젖어 들 무렵 가파른 절벽을 따라 지상 150m 높이에 만들어진 소금산의 기암절벽과 아름다운 자연을 한눈에 담아 볼 수 있는 스카이타워가 우리를 맞이했다. 사진을 가장 많이 찍은 장소이기도 하다. 한쪽에는 출렁다리가 또 다른 한쪽에는 울렁 다리가 그 아래로는 그림처럼 지어진 글램핑장과 발이 쉴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있어 여기까지 걸어온 것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사실 걸어오는 길에 대여섯 군데의 나무 의자가 있어 쉴 수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걷는 시간이 많아 되돌아가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갈걸 하고 잠시 후회도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힘을 짜내어 스카이타워의 철제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기존 출렁다리의 2배 길이(404m)로 건널 때마다 아찔하여 마음이 울렁거린다는 ‘울렁 다리’를 만난다. 길어서인지 더 많이 흔들리고 사정없이 비틀거리며 다리를 건넜다. 드디어 마지막 코스인 국내 최초·최고·최장의 산악용 에스컬레이터로, 높이 100m, 길이 200m, 4개 구간(각 50m)으로 구성되어 있어 걷지 않고 편안하게 내려왔다. 중간중간 사진도 찍고, 쉬기도 하면서 내려왔지만, 케이블카를 탈 때부터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릴 때까지 약 한 시간 반 정도 소요되는 꼭 한 번은 가보기를 권하고 싶은 멋진 곳이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다. 30분 정도 더 걸어야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일단 음식점들과 음료 등을 구매할 수 있는 곳들이 있어 시원한 밀크셰이크를 사서 마시며 30분 정도를 더 걷고 나서야 소금산 그랜드밸리 코스가 모두 끝이 났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정해진 날 밤 8시부터 시작하는 화려한 미디어파사드와 신나는 음악분수 공연이 함께 펼쳐지는 나오라 쇼를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원주의 떠오르는 명소 소금산 그랜드밸리. 남편과 함께여서 더 뜻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새로운 풍경들을 바라보며 명절 연휴의 첫날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소금산 그랜드밸리는 넉넉하게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생각하면 적당하겠다. 우린 쉽게 생각하고 물 한 병도 들고 가지 않아서 내려와서야 허겁지겁 음료를 사서 먹으며 길가의 가판대에서 새싹 보리로 만들었다는 과자를 사 먹기도 했다. 그러니 올라갈 때는 간단한 간식과 물 등을 챙겨가면 좋을 듯싶다.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칠 남매의 맏며느리가 명절 전날에 40년 동안 해오던 일을 내려놓고, 남편과 손잡고 소금산에 오를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래도 되는 걸까. 내려놓고 떠났음에도 채워지지 않는 그 헛헛함이 자꾸 내 발목을 잡으며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했다. 그런 나를 살포시 안아주던 소금산,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가슴에 새겨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