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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빛나는 밤에 Sep 15. 2024

죽음을 기억하라 (Memento mori)

누구나 죽는다.

태어나는 데는 순서가 있지만 죽음 앞에서는 정해진 순서가 없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 귀를 닫고 살려 부단히 노력 중이다. 일종의 회피였다.

하루아침 사이에도 사건 사고를 다양한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된다.

단지 내 일이 아니라서, 굳이 신경회로를 차단하고 산다.

  불필요한 정보를 차단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은 어설픈 마음이다.

남에게 일어난 일이 내 일이 아니라는 보장은 없다.

남에게 들이닥칠 일이 언젠가는 나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만 아니면 돼"


죽음에 관한 글을 쓰려는 의도를 잡아서 그런지? 계속 죽음에 관해 생각해 봤다.

이 글을 쓰기 전에도 이어령 선생님의 "눈물 한 방울" 책을 붙잡고 삶과 죽음의 끝없는 항해 앞에 끝까지 나약해진 한 인간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사후 세계가 있는지? 죽음 뒤에 어떤 삶이 펼쳐 질지 나는 모른다.

단지 언젠가는 누구나 다 죽는다.

  마지막 죽음 앞에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봤다.

후회한 가득, 미련 한가득, 하지 못했던 일과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해주지 못한 아쉬움이 남을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알지만 놓치는 부분이 많다. 삶이 괴로운 이유는 그거였다.

좋다는 걸 알지만 몸이 생각만큼 따라주지 않을 때 얄팍한 괴리감속에 괴로워하며 산다.

아는걸 제대로 실천하고 사는 삶, 그런 삶을 살 수 있다는 얼마나 좋을까?


"늙어서 죽음을  알게 되면 비극이지만 젊어서 그것을 알게 되면 축복이다"

                                                                        -눈물 한 방울 이예령 선생님-


남이 하는 말에는 콧방귀 뀌며 듣지 않는다. 어떤 순간이든 본인이 겪고 깨달은 사실을 믿는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여러 번 겪었던 건 아니었다.

어쩌면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에 시아버님과 아빠의 죽음은 자연스레 받아들여 마음의 파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생로병사"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계셔서 몸에 근육이 빠지고 앙상한 뼈만 남은 모습을 지켜봤다.

  미리 죽음을 예상하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 자연스럽게 받아 들었다. 운명의 장난처럼 한 번 떠난 죽음으로 인해 다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다는 사실은 참 마음을 아프게 한다.


살다 보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눈앞에 펼쳐질 때가 있다. 남의 일, 그게 내 일이 되어 있었다. 오빠가 우리를 놔두고 떠났다. 다정다감하게 웃어주던 오빠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함께 커피 마시고 호수를 함께 거닐던 사람이었다. 흔적도 없이, 작별의 시간을 주지 않고, 지독한 아픔만 남긴 채 떠났다. 그렇게 빨리 오빠랑 이별할 거란 생각은 일도 의심할 수 없었다. 당료를 앓고 있긴 했어도 새벽마다 호수를 돌며 건강을 챙겼다. 갑자기 독감이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한 참 지나니 이제는 폐렴이란다. 그리고 오빠와의 소식을 끊겼다. 갑자기 중환실에 입원해서 면회가 되지 않은 상황이라 오빠의 상태를 감흥하기 어려웠다. 그때까지만 해도 오빠를 쉽게 보낼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새벽녘에 걸어온 올케의 전화에 심장이 파르르 떨면서 아주대 병원 중환실에 도착했다.

그때는 오빠는 의식이 없었고 얼굴이 탱탱 부어있었고 코에는 산소 호흡기가 꽂아져 있었다.

그냥 의식이 없는 상태로 오빠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왔다.

운명의 장난은 너무 잔인한 결말을 안겨줬다.


  어떻게 그렇수가 있을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황에서 오빠는 싱싱한 갈치를 선물로 보내왔다. 오빠가 간절히 그리운 건 우리 삶에 너무 친숙하게 가까이했단 사실이다. 베풀기 좋아했던 사람이라, 억수로 고생해서 빨리 자수성가 한 사람이라 돈이 많아서 오빠에게 늘 받기만 해도 내가 먼저 챙겨주지 못했다. 그립다.

  따스한 손 한 번 잡아주지 못했고, 오빠에게 "사랑한다"란 말 한마디 던져주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결혼하면 가족들과 멀어지는데 오빠에 대한 정이 그리 깊었는지? 그렇다.

적어도 부모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웃고 떠들던 사람이었으니까....


죽음은 그렇게 잔인한 거였다. 아빠의 죽음은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오빠의 죽음은 나에게 굉장한 아픔과 고통을 남겼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고유의 명절날이면 더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란 물음을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나에게 던졌다.

 죽음이 언제 내 손을 잡아당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내일 죽을지? 한 달 후에 죽을지? 아님 100세까지 살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불확실한 삶을 걷고 있다. 나에게 하루밖에 시간이 없다면 나는 무얼 할 수 있을까? 몇 달 전쯤 오현호 코치님의 실행력 수업으로 "굳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매일 미션을 받아 행동하고, 그걸로 글을 적은 적이 있다.

그때의 미션이 "가족에게 유언장" 남기는 거였다.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얘기를 녹음하려고 첫마디를 꺼내고, 그다음 말에는 어느새 내가 관 속에 들어있는 느낌으로 말을 했다. 다시 보지 못할 가족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지금까지 했던 행동들 중에 못해줬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콧끝이 흐려지며 작은 이슬방울이 머물며 사과의 말을 한 무더기 던졌다.

다행히 아직 살아갈 날 들이 많음이 감사했다.


요즘에 내 일상은 숨가프게 하루를 채운다. 알아버렸다.

오늘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게 살아야 했고 내일 죽을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매시간에 집중하려 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을까?"

"내일" 해야지?

우리 앞에 내일은 영영 오지 않을 시간 일 수 있다.

그냥 지금하고 있는 일, 지금 만나는 사람,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찰나의 사람들에게 집중하자.  


하고 싶은 일 하고 살기, 소중한 사람에게 표현하기, 남에게 인색하지 않게 먼저 베풀기,

죽기 직전에 가장 후회하는 한 가지는

 "그때 했어야 했는데?'

  용기가 없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지금도 기회는 충분히 많다. 늦었다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다.

 완벽하게 준비되었을 때 하는 게 아니라

지금 가슴 뛸 때 하는 거였다.

지금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P.S: 에세이 10편 쓰기에 도전 중인데 이게 뭐라고 계속 미루고 마음 한 구석 불편한 감정을 앉고 살았다.

지금까지 3편 썼다. SNS 속 공간에는 매력적인 글쟁이들이 넘치고 넘쳤다. 그 속에 기가 죽지만 글 속에는 각자의 삶이 녹아있다. 내 글에는 내 영혼과 정신이 숨어있겠지..

각자의 매력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너무 잘 쓰려 애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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