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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은 뭉게뭉게

「늑대가 나는 날」 미로코 마치코

by 그리다 살랑

「늑대가 나는 날」은 미로코 마치코의 첫 번째 그림책이다.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과 거침없는 붓질에 이번에도 책을 읽으며 깊은 한숨이 나왔다.


지난 1월, 숲 속 글램핑에서 사우나를 했다. 창밖엔 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탕의 물을 채우며 피어나는 수증기를 그림으로 그렸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가을의 길목에서 겨울을 준비하듯 그림을 꺼내본다. 뭉게뭉게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꼭 내 부러움 같다. 잘 그리고 싶은데, 아니 나만의 분위기 나만의 스토리를 갖고 싶은데. 수증기가 뿌옇게 시야를 흐린다. 공중에 한 바가지 물을 뿌려버린다.


생각해 보자. [늑대가 나는 날]은 왜 한숨이 날 만큼 좋은가.


이미지 출처 예스 24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늑대가 날다니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붓터치와 색감이 거침없고 선명하다. 면지를 펼치니 새가 날아다닌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투박한 붓질이 정겹다.


면지를 넘기자마자 문제가 제기된다.

"오늘은 바람이 세다. 휘잉 휘잉 세차게 분다."

책가방을 맨 아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칼같이 들고일어났다. 아이는 바람을 버티며 앞으로 일상으로 나아간다. 첫 장부터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간다. 바람 부는 현실에서 상상의 나래로.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늑대의 꼬리는 몸집보다도 두텁고 눈에 띈다. 꼬리 끝이 노랑으로 된 것이 마치 로켓발사의 불꽃을 연상시킨다.


계속 바람 부는 하늘의 다른 동물을 연상할 줄 알았다. 아니다. 변주가 이루어진다. 이번엔 하늘에서 천둥이 친다.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친다. 아, 고릴라가 가슴을 치고 있다."

내 가슴을 치게 된다. 천둥 치는 거 진짜 고릴라 같잖아..


다음 장은 조금 무섭다. 바람에 날려 치솟은 아이의 머리카락이 전기라도 감전된 것 같다. 무엇보다 놀란 눈동자는 거칠고 분노에 찬 초사이언(드래곤볼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천둥소리에서 고릴라가 연상됨에 놀랐다면, 머리카락에선 허를 찌르는 상상력에 놀라게 된다. 삐죽삐죽 솟은 머리는, 고슴도치가 앉아서 그런 거였다!


일상을 시간순대로 따라가니 편안하고 친근하다. 내 아들의 이야기, 내 이야기 같다. 투덜대고 원망하는 말도 귀엽기만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치타와 고래다. 너무 기발하고 재밌어 한숨이 나오는 부분이 여기다. 휴우. 보실 분들을 위해 클라이맥스는 신비롭게 남기겠다.


글램핑에서의 사우나

그림 속 탕 안에 앉아 창밖을 본다.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내 한숨이 커다란 상상력이 되어 휘몰아치면 좋겠다. 따라 해 보려 갖은 동물을 머릿속에 펼쳐보지만 나의 상상력은 눈보라를 보며 늑대나 고슴도치, 치타가 떠오르진 않는다. 한숨은 그저 수증기가 되어 공기를 데우고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

수증기는 나를 덥혀준다. 덥혀주고 사라진다.


[늑대가 나는 날]은 나의 열망을 뜨겁게 덥혀주었다. 공기는 위로 올라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뜨거워진 공기는 탕 안과 밖, 그리고 내 몸에 남는다. 한숨은 이미 나를 뜨겁게 데웠다. 내 몸은 이제 활성화되었다.


이 기세로 나는 지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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