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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트레이싱지

「잃어버린 영혼」 올가 토카르축 글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by 그리다 살랑

"이제 네 물건은 다 가져가라"

먼지가 풀풀 날리는 묵직한 비닐뭉치를 엄마가 내놓으신다. 제발 열어보지도 말고 그대로 버리자는 남편의 말은 가뿐히 넘겨드리고 비닐봉지를 기어코 끄른다.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의 일기장, 졸업앨범, 대학생 때 영미문학 자료들... 세월에 삭은 공책들이 곰팡이를 매개로 들러붙어 있다. 낡은 군청색 파일 케이스가 눈에 띈다. 케이스를 두른 고무줄은 탄성을 잃은 지 오래다. 구실만 갖춘 고무줄을 끄르고 케이스를 열자 꼬깃꼬깃 네모나게 접힌 기름종이가 툭 떨어진다.


순간 ,

그것을 둘러싼 공기와 시간과 내가 - 서로를 알아보고 피식 웃는다. 접힌 선을 따라 찬찬히 펼친다. 「은비가 내리는 나라」 이미라 작가님의 순정만화다. 30여 년 전 기름종이를 대고 연필로 정성껏 따라 그렸던 '이슬비와 시리우스'. 윤슬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와 은빛물결이 출렁이는 머릿결, 섬세한 옷주름이 감탄을 자아냈던 나의 주인공들.


98년 12월 1일 그때 그 시절 순정만화




올가 토카르축이 글을 쓰고 요안나 콘세이요가 그림을 그린 [잃어버린 영혼]은 2018년에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은 작품이다. 내가 삽질 매거진을 쓰기 시작한 이유가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책을 소개하기 위해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녀의 섬세하고 풍부한 깊이를 나의 짧은 언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그저 내가 받은 감흥을 얘기하는 수밖에.


나는 영문버전으로 구입

낡은 크래프트지 질감과 색감에 눈이 간다. 책 등을 보니 내가 헌책을 샀던가 확인하게 된다. 겉표지는 낡고 칠이 벗겨진 듯 마치 내 오래된 일기장 같다. 빈티지 영화 속 정지 화면처럼 빈 의자에 검은 재킷이 걸쳐있고 의자 안쪽에선 이파리가 무성하다.

의자는 왜 비어 있을까. 풀은 왜 무성할까. 검은 재킷은 누구 것이며 왜 벗어놨을까. 옆에 있는 가방은 무엇인가.

온갖 궁금증을 자아내는 표지를 넘기면 정갈하고 오래된 느낌의 벽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 사이, 책갈피처럼 끼어있는 낡은 흑백사진 같은 그림 한 장.


......

사실 요안나 콘세이요의 그림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 그녀의 세계는 범인凡人인 나로선 가늠할 수 없는 망망대해와 같다. 나는 겨우, 반짝이는 진주 같은 것 하나, 황홀하게 무리 짓는 물고기 떼 물살, 고래가 뿜어는 눈부 물방울만을 봤을 뿐이다. (겨우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그녀 앞에선 겨우가 된다) 비범한 그녀의 언어와 그림을 다 이해할 수 없어 책을 소개하는데 매우 한계를 느낀다. 그런데 내 목적은 책 소개가 아니라 소감(마음에 느낀 바)이니까. 잘 몰라도 느낄 순 있으니까.


눈 덮인 숲이 있다. 위에서 누군가 내려보고 있다. 벤치에 두 커플의 아이들이 나오는데, 이 그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두 커플 중 한 커플의 아이들이 사라지고 장성한 어른이 대신 앉아있다. 아무래도 어린 시절의 아이가 훌쩍 커버린 것 같다. 얀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의사로부터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진단을 받는다.

환자분은 자기만의 어떤 장소를 찾아 편안히 앉아서 영혼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래서 남자는 그렇게 한다. 도시변두리에 작은 집을 구해 영혼을 기다린다. 잡목숲이 우거진 모습(이걸 어떻게 이렇게 그려내는지)에 이어 어릴 적 기름종이라고 불렀던 트레이싱지에 나무 한그루가 그려져 있다. 그 종이 뒤로, 남자가 자기만의 장소로 구입한 작은 집이 보인다. 마치 종이를 사이로 멀찍이 떨어진 누군가 남자를 지켜보는 듯하다. 콘세이요의 그림은 빛바랜 낡은 재생용지나 모눈종이 같은 빈티지한 종이 위에 그린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을 안 팬들이 낡은 책, 종이들의 선물공세를 퍼부어 평생 쓰고 그릴 종이가 차고 넘치게 되었다는,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종이 선물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의 그림감성을 따르고 싶어 나도 누런 빛깔의 작은 모눈들로 가득 찬 종이를 샀다. 아직 그 위에 한 점도 그리지 못했지만 말이다.


도입부에 나왔던 벤치가 다시 나온다. 그곳에 앉아있던 아이 커플과 장성한 어른이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유리로 꽃문양이 새겨진 옛날 스타일 문에 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이 그림은 정말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 수 없다. 휴. 이런 그림을 어떻게 그리나요.(확대해 보면 더 가관) 유리의 한 알 한 알 연필로 구현했다.


이걸 어떻게 연필(혹은 색연필)로 표현해 내나요!


의자에 앉아 영혼을 기다리는 남자와 남자를 찾아가는 어린 시절의 영혼이 조우할 때, 두 번째 트레이싱지가 등장한다. 무성하게 자란 화분을 안고 의자에 앉아있는 성인 남자가 종이 너머로 보인다. 무성한 이파리는 환영의 의미일까, 시간의 흐름일 수도 있겠다. 여유로움을 나타낼 수도 있겠다. 분석할 필요는 없다. 의미를 몰라도 괜찮다. 심장은 알 수 없는 어떤 감정으로 가득 차오르니까. 두 사람의 조우가 만들어낸 기쁨은 위에서 우릴 내려보는 존재의 시선으로 클라이맥스 되며 결말을 향한다. 작은 집은 무성한 수풀들로 우거진다.


표지의 의자는 비어있으나 빈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suitcase를 내려놓고 재킷을 벗고 훌훌 여유롭게 영혼을 기다리는 중이다. 비로소 살아 숨 쉬어, 호흡하게 된 이파리들이 파릇파릇 자란다. 비치는 종이로 인해 '영혼'의 속성이 더 선명히 느껴진다. 중학생 시절 나를 웃고 울린 순정만화를 따라 그린 기름종이가 내 영혼을 소환한다. 비록 우울하고 혼자인 듯했으나 눈부신 바닷빛을 꿈꾸게 했던 10대의 내 영혼을 되찾아준, 요안나 콘세이요는 감성천재가 아닐까 싶다. 진주 같은 것이 아니라, 진주 한 알을 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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