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개 씨의 수상한 저녁」 요안나 콘세이요
재킷 안 라벨을 자세히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
이탈리아어다. 라벨지에 쓰인 글자는 "아무개"란다. 나는야 김 아무개. 특별할 것 없는 김 씨 중 한 명이다.
처음 봤을 때 「아무개 씨의 수상한 저녁」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었다. 특히 인물의 비율이, 머리가 비현실적으로 컸고 눈과 눈 사이가 멀었다. 몸에 비해 발은 너무 작았다. 내용도 그림도 뭘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었음에도 마음을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녀의 책은 일단 사고 보는 이유다.
드로잉 수업에서 물방울 맺힌 블루베리를 그렸다. 겹겹이 칠하며 꼭 우주를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아무개 씨의 코트가 떠올랐다. 코트 안감엔 왜 하늘과 구름이 있을까? 비로소 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이할 것 없는, 이름도 평범한 '아무개'씨. 겉으로 보기에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하지만 그의 일상은 일상이란 말과 다르게 예사스럽지 않다. 수프를 먹을 땐 수프 그릇에 커다란 채소가 자라나고, 설거지통 그릇에선 꽃이 피어난다. 아무개 씨는 설거지통 안에 욕조처럼 몸을 담근다. 요상한 일상은 밤이 되면 달라진다. 밤마다 그는 별을 만든다. 빛을 잃어가는 별이 있으면 밤은 아무개 씨를 찾았다. 별에게 아무개 씨는 아무개가 아니었다.
빛이 더 이상 스스로 빛을 낼 수 없다면 소멸하여 끝나는 걸까? 내가 꿈꾸던 별은 소멸하고 있었다. 우울과 무기력으로 일어나지 못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동안에도 아이들은 커갔다. 남편과는 지지고 볶으며 더 끈끈해졌다. 내 코트 안엔 또 다른 하늘, 또 다른 우주가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우울과 무기력한 일상, 정신과 약을 10년째 먹는 김 아무개 씨 나에게도 펼쳐 보이고픈 하늘과 우주가 있었다. 처음엔 너무나 뜬구름이라 도저히 닿을 수 없어 막막했다. 그저 밑색부터 하나씩 여전한 방식의 일상을 살아가며 시간을 쌓을 수밖에 없었다.
저 별 하나가 저절로 빛날리는 없다.
저 하나에 우울이 천 근
저 하나에 무기력이 만 근
저 하나에 시간의 흐름이 몇 겁이나 들어서 빛날 리가 없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절로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저 혼자 서서, 千夜(천야)에,
꽃 지고 새 잎 돋고 열매 맺혔다가 다시 꽃 피고 잎 지는,
그런 것들이 다 겹치고 겹쳐서 들어가서,
저렇게 둥글고 붉게 됐을 게다
저게 저렇게 맛있을 리는 없다
저 안에 계절이 몇 번
저 안에 눈비가 몇 번
저 안에 사람의 마음이 몇 번이나 들어서 맛있을 리는 없다
장석주 시집 《내 잠 속의 모래 산》 등, 1998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