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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베리 한 알

「아무개 씨의 수상한 저녁」 요안나 콘세이요

by 그리다 살랑


재킷 안 라벨을 자세히 보라.

무슨 말인지 모를 것이다.....

이탈리아어다.

라벨지에 쓰인 글자는 '아무개'란다.


「아무개 씨의 수상한 저녁」을 읽고 무슨 이야기인지 처음엔 파악이 안 됐다. 인물의 비율도 머리가 비현실적으로 크고 눈과 눈 사이가 너무 멀었다. 몸에 비해 발은 또 매우 작았다. 그럼에도 요안나 콘세이요의 글과 그림은 언제나 내 마음 깊은 곳을 터치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드로잉 수업에서 블루베리를 그렸다. 블루베리가 꼭 우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개 씨의 코트가 떠올랐다. 코트 안감에 왜 하늘이 있을까?


특이할 것 없는, 지극히 평범한 '아무개'씨. 하지만 그의 일상은 일상이란 말과 다르게 예사스럽지 않다. 그의 수프 그릇엔 커다란 채소가 자라고, 설거지통에선 꽃이 핀다. 아무개 씨는 그 통이 욕조인 것처럼 몸을 담근다. 요상한 일상은 밤이 되면 정체가 드러난다. 밤마다 그는 별을 만든다. 빛을 잃어가는 별이 있으면 밤은 아무개 씨를 찾아 주문을 했다. 별에게 아무개 씨는 그저 그런 아무개가 아니었다.


내 안의 별이 빛을 잃어가던 시간이 있었다. 더 이상 빛을 꿈꾸지도 않았다. 우울과 무기력 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했던 건 아무개 씨의 '일상'이었다. 어느 누구나, 보통사람이라면 해야 하는 일상의 삶 말이다. 아침엔 일어나야 했고, 밥을 해서 아이들을 먹여야 했으며, 먹었으면 뒷정리를 해야 했다. 설거지는 늘 자비 없이 쌓였다. 이런 엄마임에도 남편과 아이들의 별은 제자리에 있어줬다.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서서히 일상을 찾아갔다. 아무개 씨처럼 수프(밥)를 먹고 설거지를 하고(언제 다하지란 생각으로 지치기 전에 맨 위에 있는 그릇부터 씻기 시작했다) 화분에 물을 주고(아이들을 먹이고) 구멍 난 양말을 기웠다(아이들을 입혔다).


일상을 살아내는 힘은 꿈을 꿀 뿐 아니라 한층 더 가까이 가게 했다. 늘 뜬구름만 잡던 나는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다. 색연필을 구매하고, 종이를 구입하여 무엇이든 서걱거렸다. 김 아무개인 나에게도 펼쳐 보이고픈 하늘이 있었다. 처음엔 그저 선 하나였다. 밑색만 단출하니 깔렸을 뿐이다. 그러나 파란빛 보랏빛 밑색을 칠하고 또 칠하며 색감을 쌓아 올렸다. 어느덧 블루베리는 단단하고 알찬 색으로 들어찼다. 땀방울 마냥, 눈물 마냥 영롱하게 물방울이 매달린 채 말이다. 림을 보고 있자니 대추 한 알이란 시가 생각났다.


대추 한 알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서 붉어질 리는 없다


저게 저절로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저 혼자 서서, 千夜(천야)에,

꽃 지고 새 잎 돋고 열매 맺혔다가 다시 꽃 피고 잎 지는,

그런 것들이 다 겹치고 겹쳐서 들어가서,

저렇게 둥글고 붉게 됐을 게다


저게 저렇게 맛있을 리는 없다

저 안에 계절이 몇 번

저 안에 눈비가 몇 번

저 안에 사람의 마음이 몇 번이나 들어서 맛있을 리는 없다


장석주 시집 《내 잠 속의 모래 산》 등, 1998년 발표


한 알의 블루베리, 한 알의 우주


블루베리 한 알


저게 저절로 빛날 리는 없다.

저 하나에 우울이 몇 개

저 하나에 무기력이 몇 개

저 하나에 분노가 몇 개나 들어서 저절로 빛날 리는 없다.


저게 저절로 저 혼자 여물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남편의 도움과

저 안에 아들 둘과

저 안에 신앙이 들어서 저 혼자 여물 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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