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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창작 얘기를 하자면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by 그리다 살랑

브런치에서 '창작 분야 크리에이터'다.


오프로 참가 중인 그림책 모임에서 온라인 창작소모임을 한단다.

뭔가를 '창작'한다는데 '창작 분야 크리에이터'가 가만있을쏘냐. 오리엔테이션에 냅다 참석했다. '이야기'를 창작한단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해 보고, 롤모델로 삼고 싶은 작품을 분석해 오란다.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장르는 자유다. 나는 역시 그림책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이야기에는 간극이 있을 거라고 했다. 그림으로 말하자면 내가 그리고 싶은 스타일은 묘사가 선명하고 색감은 빈티지스럽게 '잘' 그린 그림이다. 아래 그림에선 왼쪽에 있는 스타일(인스타 광고 속 한 장면을 그렸다). 드로잉 선생님의 코칭을 받으며 그렸다. 집에서 나 혼자 그린 건 오른쪽 그림이다.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은 없다. 오른쪽 그림의 모델은 15년 전 나의 집이다. 우드 인테리어가 로망이었기에 출산 후 이사 인테리어를 하며 싱크대 상판을 우드로 주문했다. 코팅오일을 칠했으니 괜찮겠지 하고 물을 흥건히 쓰다가 싱크대 주변이 시커멓게 썩어 버린 기억. 로망과 현실의 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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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왼쪽)와 할 수 있는 이야기(오른쪽)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가 쓰고 그린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에는 아이들이 구덩이에서만 논다. 학교 안에 놀이터와 체육관이 있는데도 말이다. 나무뿌리가 얽히고설켜 다칠 위험이 많은 구덩이에서 아이들이 노는 것이 선생님들은 걱정된다.


어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된다.

아이들 마음은 천퍼 이해된다.


아이들은 구덩이에서 놀고 싶다. 왜? 구덩이는 아주 아주 넓고 정해진 게 없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우리는 쉬는 시간마다 무조건 구덩이로 갑니다. 구덩이는 아주 넓고 또 누구든 놀고 싶은 대로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님들은 이제부터 구덩이에서 노는 건 금지라고 했습니다.

왜죠? 왜죠? 왜 금지인가요?


아이들의 강한 의문에 웃음이 나온다.

정말이지 이해가 안 가는 거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놀지 못하게 구덩이를 흙으로 메워버린다. 아, 아이들은 이렇게 다뤄야 하는군요.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다 혼자 열폭 터질 것이 아니라, 땅을 아예 메어버려야 했다. 그런데 망연자실 이 사태를 지켜보던 아이들의 해결책을 보라. 말도 드럽게 안 듣는구나 싶은데 이들을 지켜보는 내 입꼬리는 올라간다. 웃음이 새어 나온다. 왜지? 왜지? 왜 그런 건가요?


하고 싶은 것을 못하게 됐을 때 이전의 구덩이만 그리며 우울해할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보면 좋겠다. ADHD와 우울 약을 먹는 어른이지만, 그렇기에 순수하고 때론 철없게 아이처럼 사는 것도 꽤 재미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정신없고 서툴고 늘 실수투성이에 되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 볼 때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면 좋겠다.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결국엔 즐기게 된 이야기면 좋겠다. 빈티지풍의 세밀하고 깊이 있고 신비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못 하더라도 단순하지만 나만의 우드톤으로 내 색깔을 내는 그런 그림이고 싶다.


창작 소모임 과제 롤 모델 삼고 싶은 책으로 [나랑 노랑]을 하려고 한다. 어떤 것에 정신없이 빠지다 결국 융화돼 버리는 게 좋다. 노랑 빛을 표현한 형광 노랑도, 정신없는 발랄함도 마음에 든다. 뭘 그리든 나도 형광으로 칠할 테다. 형광색이 신이 난다. 그래서 무슨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까. 한 달이란 시간이 짧아서 부족하고 길어서 괴롭다.


어쨌든 꽤 예술가스럽지 않은가. 창작 크리에이터의 고뇌라 이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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