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숨은 뭉게뭉게

「늑대가 나는 날」 미로코 마치코

「늑대가 나는 날」은 미로코 마치코의 첫 번째 책이다. 어린아이 같은 상상력과 거침없는 붓터치에 한숨이 나올 만큼 재밌게 읽었다.

지난 1월, 숲 속 글램핑에서 사우나를 했다. 창밖엔 눈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탕의 물을 채우려 온수를 틀자 탕 안이 서서히 수증기로 들어찬다. 아침저녁으로 선선해진 가을의 길목에서 그때 그 뜨뜻한 탕 안이 생각난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모양새가 꼭 내 부러움 같다. 잘 그리고 싶다 아니 나만의 분위기, 나만의 스토리를 가지고 싶다. 수증기가 뿌옇게 시야를 흐린다. 공중에 물을 한 바가지 뿌려버린다.

한번 생각을 해 보자. 이 책은 왜 한숨이 날 만큼 좋은가.

「늑대가 나는 날」 표지

제목부터 호기심을 자아낸다. 늑대가 날다니 무슨 일일까 궁금하다. 붓터치와 색감이 거침없고 역동적이다. 면지를 펼치니 새가 날아다닌다. 어린아이가 그린 듯 투박한 붓질이 정겹다.

면지를 넘기자마자 위기가 제기된다.

오늘은 바람이 세다. 휘잉 휘잉 세차게 분다.

책가방을 맨 아이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칼같이 일어서 있다. 아이는 바람을 버티며 앞으로, 일상으로 나아간다. 첫 장부터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의 멱살을 잡고 간다. 바람 부는 현실에서 상상의 나래로.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늑대가 뛰어다녀서 바람이 휘잉 휘잉 세차게 부는 것이란다. 늑대의 꼬리가 마치 로켓발사에서 나오는 노랑 불꽃을 연상시킨다.

계속 바람 부는 하늘의 다른 동물을 연상할 줄 알았다. 아니다. 변주가 이루어진다. 이번엔 하늘에서 천둥이 친다.

우르르 쾅쾅 천둥이 친다. 아, 고릴라가 가슴을 치고 있다.

감탄이 나온다. 천둥 치는 거 고릴라가 가슴을 치는 것과 정말 똑같잖아.

다음 장은 조금 무섭다. 바람에 날려 치솟은 아이의 머리카락이 전기에라도 감전된 것 같다. 무엇보다 놀란 두 눈동자는 거칠고 분노에 찬 초사이어인(feat. 드래곤볼) 같다. 천둥소리에서 고릴라가 연상됨에 놀랐다면, 머리카락에선 허를 찌르는 상상력에 놀라게 된다. 삐죽삐죽 솟은 머리는 고슴도치가 앉아서 그런 거였다!

내 아이의 하루 일상을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다. 투덜거리는 말도 귀엽기만 하다. 뭐니 뭐니 해도 압권은 치타와 고래다. 너무 기발하고 재밌는 상상에 한숨이 나오는 부분이 이곳이다. 휴우. 보실 분들을 위해 자세한 설명은 자제하겠다.

글램핑에서의 사우나

탕 안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눈보라가 휘몰아친다. 내 한숨이 커다란 상상력이 되어 휘몰아치면 좋겠다. 따라 해 보려 갖은 동물을 머릿속에 펼쳐보지만 나의 상상력은 눈보라를 보며 늑대나 고슴도치, 치타를 떠올리진 않는다. 한숨은 그저 수증기가 되어 공기를 데우고 사라질 뿐이다.

그렇다,

수증기는 나를 덥혀준다.

덥혀주고 사라진다.

「늑대가 나는 날」은 나의 열망을 뜨겁게 덥혀주었다. 공기는 위로 올라가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지만 뜨거워진 온도는 탕 안과 밖, 그리고 내 몸에 남는다. 한숨은 이미 나를 뜨겁게 데웠다. 내 몸은 이제 활성화되었다. 이 기세로 지금 한 편의 글과 그림이 이렇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