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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왜 책을 읽고 있어요?

바닥부터 다시

by 바스락

25년 12월 9일


'내가 글로 먹고 살기를 다짐했지만 글만 주구장창 쓴다고 될까?'

갑자기 허수아비가 된 듯했다. 마냥 두팔 벌리고만 있지 저어기의 참새는 쫓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면 어쩌나 싶은 불안감이 배꼽 언저리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략>


'어차피 배워봤자 난 못할텐데' 라는 스스로에 대한 한계에 발목잡혀 나는 결핍을 쉽게 단념하기 위한 유리한 무기로 활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핍이 진정 단념을 위한 이유인가?

결핍이 있지만 단념만 하지 않으면 이는 현재에 국한될 뿐이다.

결핍이 있다고 단념까지 해버리면 이는 미래까지 영원히 없앤 것이다.


<관계의 발작과 경련> 김주원



"엄마 글을 쓴다면서 왜 책을 읽고 있어요?"



새벽에 잠이 깨서 밖으로 나가려는 나를 보고 아들이 물었다.

"엄마 어디가?"

"엄마 글 쓸 게 있어서, 조금만 쓰고 올 테니 자고 있어"


아들은 잠이 오지 않았는지 거실로 나왔고,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나를 보고 물었다.

"엄마 글 쓴다면서 왜 책을 읽고 있어요?"

"어, 글을 쓰고 싶은데 너무 어려워서 책을 읽는 거야, 책을 읽다 보면 글이 써질 것 같아서"

"아, 그렇구나, 그래 그런 거야"


아들은 혼자 중얼거리더니 빨리 쓰고 오라며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책을 펼쳤다.

문득 나는 매번 준비만 하고 사는 사람 같았다.

실행과 실천은 겁이 나서 뒷걸음치고 준비만 하다 포기하는 사람.

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

또 준비만 하다 돌아서기 위해 변명하는 건 아니다.


여태껏 나는 내 바닥을 알지 못했고, 처음으로 내 바닥을 들여다볼 용기가 생겼다.

괜찮은 나에서 괜찮지 않은 나여도 괜찮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마냥 두 팔 벌리고 있는 허수아비가 되지 않기 위해 지금 바닥도 괜찮다.



#새벽#독서#관계#바닥#시작#다짐#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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