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북극은 실존하는 장소라기보다, 어떠한 관념적 대상이었다.
아홉 살 여름의 일이었다. 뉴칼래도니아에서 방학을 보내고 돌아온 어느 날, 아버지는 뜬금없이 우리 형제에게 물었다. "타히티에 갈래, 아니면 남극에 갈래?*"
그때까지만 해도 '갈 수 없는 곳'이라는 상징적 의미에 머물러 있던 남극이, 그 순간에는 적어도 떠올려 볼 수는 있는 선택지로 현실에 발을 들였다.
결국, 그다음 해 여름의 우리 가족은 이국적인 휴양지인 타히티를 택했으나, 그즈음부터 남극은 더 이상 내게 미지의 모험이 기다리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친구와 농담으로 "돈이야 왕창 깨지겠지만 서른 되면 가자"고 말할 수 있는, 비용을 지불하고 갈 수 있는 실존적 장소로 거듭난 것이다.
반면 북극은 여전히 이상향으로 남았다. 롯데와 우승처럼. 늘 희박한 가능성으로 거론되지만, 내가 태어난 이후로는 존재한 바 없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6 대륙 75개국을 여행했다. 30에는 남극을 밟겠다고 다짐하며, 이미 4개년 치 세계일주 계획을 세워둔 나지만, 이제껏 그 어디에도 북극이 설 자리는 없었다. '떠올리지조차 못했다'라고 하는 게 맞겠다.
그러한 내가 북극으로 떠나겠다는 결심을 한 건 - 여느 여행과 다를 바 없이 - 여러 번 겹친 우연의 산물이었다.
당초 나는 가을방학을 맞아 가보지 않은 국가를 하나 여행할 생각이었다. 굳이 덧붙이자면, 비행기 티켓이 저렴한 국가 하나를. 중남미 혹은 카리브해를 떠올렸던 나의 예상에 배치되게 검색창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를 비롯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도시를 토해냈다.
당황스러웠고, 무엇보다 실망스러웠다. 이미 두 번이나 찾은데다 고모네 부부에게 민폐를 더 끼치기는 싫은 코펜하겐은 차치하더라도, 대관절 겨울에 북유럽에 가서 무얼 한단 말인가.
작년 경험한 북유럽의 미드소마는 날 밝은 날이면 뺨 간질이는 미풍에 기분마저 산뜻해져 마음이 달떴으나, 그건 여름이었다.
결과랍시고 나온 나라는 많았다. 이미 다 가본 스칸디나비아 반도, 혹은 전쟁과 제재로 엄두도 나지 않는 국가들 뿐.
불효자의 마음은 그래도 이왕 갈 것이면 가보지 않은 곳으로, 이국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는 쪽으로 기울어, 떠올린 건 북의 베니스, 상트페테르부르크.
그렇게 신나서 계획을 룸메이트에게 떠벌리자 그는 한 가지 사실을 지적했다. “거기 제재 중이라 카드 못 쓸 걸?”
결국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애꿎은 지구본만 돌려댔다. 돌리다 보니 북쪽에 남은 건 길게 가고픈 알래스카와 여행 비용이 살벌한 그린란드와 페로 제도 뿐.
그렇게 창을 끌까 고민하다 마지막으로 마우스를 내리던 그때, 눈을 의심케 하는 지명이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스발바르.
가격은 더 황당했다. 500불...
"이게 말이 되나?“ 나는 눈을 비볐다.
관념 속에만 존재하던 북극이, 오류처럼 뜬 가격표와 함께 현실로 툭 튕겨져 나왔다.
코펜하겐과 오슬로를 경유해야 하는 데다 공항에서 두 밤을 보내야 하는 극악의 일정이긴 하지만, 오는 10월, 오슬로와 스발바르 제도를 오가는 왕복 항공편이 대략 300불임을 고려했을 때는 말도 되지 않는 가격이었다. 실제로 항공사에 지불하는 돈은 30불 수준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항 사용료, 유류세 등이 차지했다.
칙칙한 북유럽의 겨울은 내키지 않았지만, 북극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끊지 않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 내가 북극을 찾겠는가.
스발바르. 그리고 북극.
낯선 그곳의 지명을 한 자 한 자 발음해보며 나는 생각했다.
“여기도 오로라가 뜰까…”
오로라의 수도인 트롬쇠로 향하는 항공편은 200불 가량 비싸, 나는 스발바르에도 오로라가 뜨기를 간절히 바랐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다. 2년 전, 레이캬비크의 텅 빈 밤하늘을 보며 느꼈던 아쉬움이 파문처럼 번져왔다. 졸업 전 버킷리스트에 풀지 못한 숙제처럼 남은 오로라. 어쩌면 이번에는…
구글은 “스발바르는 북극에 위치하여 오로라를 관측하기에 최적의 장소이며, 특히 10월 말부터“로 시작되는 결과를 제시했다. 더불어 “운이 좋다면 10월 초에도 오로라가 관측된다”고. 10월 초 일정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으나 가을 방학을 내가 뒤로 조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홉 살 어린 내게 아버지는 타히티와 남극이라는 선택지를 던졌고, 그로부터 16년이 지나, 스카이스캐너는 내게 북극이라는 선택지를 던져주고 있었다. 중간고사 일정도 나오지 않은 상황 속에 시험이 겹치면 수강 철회를 불사해야 하는 적잖은 위험이 따랐다.
16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 그 선택지를 붙잡을지 말지는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렸다.
“우리는 왜 뉴칼래도니아랑 타히티를 가게 된 거야?”
“늙지 않고 그런 곳을 가기는 어렵잖니. 너희가 늙지 않고서는 가보지 못할 곳을 데려가고 싶었어.”
언젠가는 분명 갈 터였다. 그러나 그 언제가 언제일까. 고민은 짧았다. 이름부터 무시무시한 ‘회전익 항공역학‘ 수업은 다음 학기에 들어도 무방했고, 다음 학기에 듣는 게 나을 것 같았다.
2주치 주급을 털어넣어 항공권을 발권하고, 부모님께 ‘북극’으로 간다 말씀드렸다. 답변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젠가 남극도 가게 될 것이라고 덧붙여 말씀드린 것만 기억날 뿐.
2년 전, 나와 친구들은 오로라를 찾아 북유럽으로 떠났다. 파리를 거쳐 킹스크로스 역에 도착했고, 다시 런던에서 날아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 착륙했다. 그러나 자연은 그 신비를 우리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25개로 정리한 졸업 전 버킷리스트도 오로라와 마지막 관문, 취업, 둘만 남은 지금, 나는 미지의 극점에서 아문센과 핸슨, 그리고 북극곰이라는 흩뿌려진 단어들을 얼기설기 엮을 날을 그린다.
긴 북극의 밤에 묻혀, 관념적 대상이 실존적 장소로 거듭날 날을, 따스한 벽난로 앞에 앉아, 그 온기에 빙점이 녹아내릴 날을 그린다.
그렇게, 나는 주민보다 많은 북극곰이 살아가는 지구 최북단의 마을, 롱이어비엔으로 가는 항공권을 끊었다. 모든 모험가들이 향했던 북극의 밤으로, 나 또한 걸어 들어간다.
간다. 북극으로.
*이번 여름 한국에 들러, 어떻게 뉴칼래도니아, 타히티, 남극을 떠올렸는지 여쭤보니 그냥 여행사에 전화를 거셔서 아이들을 데리고 갈 만한 곳 중 가장 비싼 곳을 물어보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