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늘의 화를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엄마도 사람이다.

by 주다

오랜만에 엄마들이 모였다. 6학년의 자녀를 가진 엄마들이다. 머지않아 중학생이 되는 아이들을 보며 언제 이렇게 시간이 흘렀는지를 한탄한다. “왜 이렇게 시간이 빨라.” “벌써 중학생이야.” “중학교, 고등학교 6년도 금방 가겠지.”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며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은 아이들을 데리고 만난다. 부모하고 노는 것보다 친구들하고 노는 게 더 재밌다는 아이들을 위해 서로 놀게 해 주고 엄마들도 우리의 수다를 떤다.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은 이거다.


“해수는 좀 변했어?” 변하는 게 당연한 시기. 말이 짧아지고 엄마의 잔소리에 ‘알았어, 그만해’란 소리를 먼저 하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이 만나서 노는 걸 보면 아직은 영락없는 철부지 들이다. 변하는 건 말투와 외형적인 변화. 변성기를 지나고 있는 애들은 염소 울음소리 같은 말투와 굵은 목소리가 왔다 갔다 하고, 선이 커지고 누가 봐도 알아볼 정도로 키가 쑥 큰다. 말이 없어지는 아이도 있고, 말투가 공격적으로 변하는 아이들도 있다. 모두 들 몸의 변화를 전면으로 받고 있는 시기다.


그런 변화들이 엄마들이 보기엔 기특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다. 대놓고 부모보다 친구라는 말에 기분이 상하고, 대답을 잘 안 하고 툴툴대는 모습이 낯설다. 당연하다는 걸 알지만 엄마들도 아직은 준비가 덜 된듯하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속상하고 속상함을 수다로 푼다. 비슷하다는 것에 위안을 받고 일부러 엄마를 속상하게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호르몬 변화의 일시적인 현상임을 수긍한다.


우리 집의 가을이도 엄마아빠와 거리감을 두려고 하는 모습을 보인다. 가벼운 포옹 정도는 해주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거부다. 공격받은 벌이 침을 쏘는 것 마냥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말투는 전투적이다. 모른 척, 이해하려고 해도 계속되는 침의 상처는 곪기 마련이다. 며칠 전에는 버릇없는 말투에 기꺼이 전쟁에 참전하고 말았다.


환절기, 천식이 자주 오는 가을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숨 쉬기라 힘들다고 했다. 호흡기 치료를 급한 대로 하고 “아침에 병원 갔다 갈래? 오후에 갈까?” 하고 물었다. “호흡기 치료했더니 괜찮아졌어, 그리고 1교시에 영어 수행평가 있어서 오전에 못 가.” “그래 그럼 오후에 병원 접수해 놓을게.” 아픈 몸보다 수행평가를 챙기는 모습에 나름 감탄했다. ‘짜식 다 컸네, 수행평가도 챙길 줄 알고.’ 나의 감동은 여기까지. 오후에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 “네가 현 상태가 어떤지 선생님한테 직접 말씀드려.” “ 엄마가 얘기해 줘.”

“어 가을이 왔어, 어디가 안 좋아?” 선생님이 물었고 가을이는 나를 쳐다본다. 나한테 말하라는 신호다. “아침부터 숨 쉬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언제 그랬어?” 나는 당혹감이 밀려왔다. 내가 언제 그랬냐는 아이의 말투는 누가 들어도 공격적. 의사 선생님이 중간에서 무안하셨는지 “알았어, 선생님이 청진기 대서 볼게” 나는 아이를 쳐다본다. 가을이는 또 나에게 한마디 덧붙인다. “왜, 문제 있어?” 이거 나랑 싸우자는 건가. 진료실이라 최대한 표정관리를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소리에 의사 선생님은 청진을 보시고 “가을이는 그만 나가서 기다리자.”라고 하신다.


수납을 하고 나온 나는 억눌렸던 화를 아이에게 표출한다. “너 그 말투가 뭐야? 내가 아픈 곳 직접 말하라고 하니까 네가 엄마한테 말하라고 했지, 그리고 아침에 네가 숨쉬기 힘들다고 말 안 했다고?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눈치가 보였으면 너한테 나가 있으라고 하셨겠어?” “ 아, 그래서 나가 있으라고 한 거야? 나는 몰랐는데.” 정말 몰랐다는 말투,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태도에 나는 화가 더 오르기 시작했다. “너 내가 어른한테 말할 때 예의 지키라고 했지? 말투 계속 그렇게 버릇없이 말할 거야? 나도 너한테 매사 툴툴대면서 말할까?” 가을이는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됐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한다. “알았어, 그만해.”

나름 가을이를 배려한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가볍게 ‘예의는 차려서 말하자’, ‘다시 공손하게 말해줄래’하고 넘겼었다. 사춘기 아이와 데면데면 해지는 사이가 되면 안 된다는 충고를 듣고 잔소리를 줄이고자 안 하던 애교도 부렸다. “이제 네가 뭘 잘못하면 엄마는 벌로 네 볼에 뽀뽀를 할 거야, 좋지?” 내가 다가가면 가을이는 “잘못했어요”말하며 뒷걸음을 쳤고 나는 더 다가가 “그럼 포옹으로 합의하자” 라며 더 들이댔다. 우리의 표정에는 웃음이 흘렀다. 무겁던 분위기가 가벼워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나는 오늘의 화를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한 번쯤은 가을이도 느끼고 배웠으면 한다. ‘아, 우리 엄마가 버릇없는 말투는 못 참는구나, 몇 번 경고했는데 계속되면 폭발하는구나’ 정도의 선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엄마도 사람이다. 꽂혔던 침이 다시 꽂히면 아프고 멀어져 가는 아이들을 보며 허탈한 엄마 사람. 조금 더 아이들을 보고 품고자 우리는 한 달에 한번 모든 약속을 미루고 너희들과 놀 계획을 짠다. 이번에도 우리는 목장 산책로의 넓은 대지에 아이들을 풀어놓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찍으며 말한다.

“나는 요즘 아이들 뒷모습이 그렇게 이쁘더라.”

“당연히 그렇지 않을까, 앞모습 찍으면 인상 쓰고 찍지 말라고 하니까, 뒷모습이 예쁘지.” “아, 그런 거구나. 당연한 결과였네.”

당분간 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사랑하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웃으며 우리를 쳐다봐 줄 날이 오겠지. 돌아 봤을 때 그 자리에 항상 있을 엄마들을 생각하며 적당히들 하자.


뒷모습.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