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는 혼자서 정말 잘 놀았다. 엄마를 부르다가도 놀이에 집중하면 슬그머니 빠지는 엄마의 뒤꽁무니를 한 번 보고는 이내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들었다.
둘째 아이는 달랐다. 늘 언니와 함께 했었고, 아파트 옆 동에 사는 사촌동생과 함께 놀아서인지 혼자 노는 법을 터득한 적이 없는 아이 같았다. 문제는 둘째가 누군가와 함께 할 수 없는 매일을 보내게 되자 나타났다. 주야장천 엄마만 불러대는 둘째. 오늘도 심심해 타령이다.
이러면 너무 힘든데.
종종 들어가 보는 전문가의 육아 블로그를 읽는 순간 뒷골이 찌릿 해온다. 눈알이 굴러갔나 싶게 빠른 속도로 글자를 읽어내 해결책을 탐색한다. 내 아이의 문제와 같은 주제라고 느껴지는 순간, 엄마의 접수 속도는 마하보다 빠르다.
아이들의 놀이 발달에는 4단계가 있다고 한다.
혼자 놀이> 병행 놀이> 연합 놀이> 협동 놀이
1단계가 충분하지 않은 채 뒤 단계의 놀이도 가능은 하다. 혼자 놀아야 할 시간에 양육자가 개입하면 오롯이 발달했어야 할 1단계가 패스된다. 그러다 문제는 혼자가 되었을 때 드러난다. 아. 둘째의 문제는 1단계구나. 기초가 튼튼하지 못해서 그랬구나. 그래서 내가 갈렸네. 정말이지 무릎을 탁 칠 깨달음이 아닌가.
그때부터 같이 놀아주지 않기 작전에 돌입, 심심해를 외치는 둘째를 온전히 견뎌내기로 했다. 처음부터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으니
"엄마가 이번 한 판은 해 줄 수 있어. 대신 한 판이 끝나면 혼자 놀아야 해. 엄마가 설거지랑 청소랑 집안일할 게 많거든."
점점 둘째에게 선을 그으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책도 읽고 바쁜 척 뿜뿜 했더랬다. 아이의 성장을 생각할 때 너무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에 견뎌졌다.
아이는 때가 되면 친구들이 더 좋다고 엄마 품을 떠날 거다. 불변의 진리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의 세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채 친구와 놀다가 혼자가 되는 순간이 온다면? 내 아이는 그 시간을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수지 엄마~ 뭐 해용? 커피 마시러 갈래요?'
'그래요~몇 시에 볼까요? '
어느 순간, 문득 떠오른 내 아침 일정을 살펴보자니 갑자기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를 불러내어 수다 떨며 함께하는 시간이 매일이었던 사실을 깨달은 거다. 옴마야. 이건 뭐 심심해를 직접 외치지 않았을 뿐 둘째의 심심해와 같은 말이 아니던가?
오. 마이 갓.
1단계 성장에서 멈춰버린 엄마라니.
둘째에게 퍼부었던 잔소리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심심할 땐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 하다 재미없으면 또 다른 걸 해 보고. 그러다 보면 진짜 재미있는 일이 생길걸? 그렇게 네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거야. 지금은 그 일은 찾느라 좀 심심한 거야.'
'심심한 건 좋은 거야. 시간이 많으니까 생각을 할 수 있잖아. 아까 읽은 책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어제 봤던 만화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뭘 하면 재미있을까도 생각해 보고. 우와~그러다 보면 우리 딸 생각 부자가 되겠네.'
이렇게 똑 부러지는 말들을 아이에게는 던져두고 정작 나에게 적용하지 못하는 지혜 제로의 엄마였다. 동네 엄마들을 만나서 왜 우리는 취미 하나 없냐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다고 한탄을 하던 지난 세월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나 자신에게는 그런 시간조차 만들어주지 않고는 둘째만 들볶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