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을 다니던 큰 아이의 질문에 난 답을 할 수 없었다. 작가란 꿈도 내뱉고 나서야 말해도 되는 꿈인가 싶었는데, 왜 안되었냐는 질문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
"커서 뭐 하고 싶어?" "몰라." "이제 생각해 봐야지. 그래야 어떤 공부를 할지도 생각하지."
초등 고학년이 되어 중학교 갈 날이 얼마 안 남은 아이에게 내가 질문을 던졌다. 예상은 했지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투의 답이 돌아왔다. 갑자기 초조해진 나는 진로서적이며 관련 영상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중1 때 자유학기제가 있다지만 생각 정도는 미리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엄마오지라퍼를 자처했다. 엄마 딴에는 몇 번 던진 질문이었지만 받아들이는 아이는 잔소리로 들렸는지 끝내는 자기는 아직 초등학생이라며 그만하라는 외침으로 이 주제는 막을 내렸었다. 그런데 내가 물을 때마다 아이가 따져 묻던 말이 있다. 그럼 엄마 꿈은 뭔데?
몇 년 전 계약직으로 중견기업에서 잠시 일을 하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띠동갑인 동료들과 정말 재미있게 회사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때 내 남은 인생을 이런 생활을 하면서 살기는 힘들겠다는 생각도 같이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경단녀였던지라 계약직으로 들어간 건 감지덕지였지만 40줄에 들어선 나이이다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아이의 질문이 내 마음을 크게 찌르기도 했고.
코로나 덕에 계약은 종료되었고 덕분에 그때부터 난 꿈 앓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일도 싫으면 대체 난 원하는 게 뭐니. 스스로에게 끝없이 물었던 것 같다. 변변한 취미도 흥밋거리도 없던 나에게 이만 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입맛도 별로 없었고 어느 것에도 흥이 나지 않았다. 떠오르는 말은 단 하나,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어서 주워들은 말은 있어서. 그 말을 붙잡고 끊임없이 고민했다. 더 이상 사는 대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고민은 확장되어 어린 시절의 상처부터 갖가지의 실패 등 모든 것이 내 마음으로 쏟아졌다. 대체 난 어떻게 산 거야.
마흔에게 고통은 필수입니다.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라는 책을 보면 마흔의 지진은 당연하다고 한다. 상실을 끌어안고 전환을 이해해야 하는 중년이기 때문이란다.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고 고민하는 동안 어쩌면 지금의 이 지진이 나에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나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겨우 글을 쓰게 되었다. 나를 들여다보는 몇 년간의 생각 끝에 드디어 실행하게 된 것이다. 어떤 종류의 글을 써야 하는지,어디에 글을 써야 하는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인지는 일단 쓰면서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말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