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가 어렸을 때 동네 놀이터에서 놀랄 만한 경험을 했더랬다. 누구는 별 일 아닌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꽤 충격적이었다. 초등 4-5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들이 축구공을 굴리며 놀고 있었는데 더 큰 형이 나타났다. 서로 아는 사이였고 그 형은 아이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도 불량식품으로 보였고 선명한 파란색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생겼었다. 그때 한 아이가 그 젤리 같은 걸 들고 달려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아이가 헐레벌떡 놀이터로 돌아왔다.
"엄마가 먹어도 된데."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 모습이 다소 충격이어서 두고두고 회자했었다. 저 젤리 하나를 먹는데 엄마의 허락을 받아야 하다니. 저 정도도 혼자서 판단할 수 없는 걸까? 내 육아의 목표가 정해진 순간이었다.
[놓아주는 엄마 주도하는 아이]라는 책을 읽다 보니 삶의 통제력에 관한 문제는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된 것 같다. 기후위기만큼이나 청소년의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원인을 삶의 통제력 부재에서 찾았다. 이 주장에 매우 동감한다. 사소한 일들의 취사선택부터 하루 일과의 스케쥴링, 심지어 장래희망까지도 부모가 컨트롤하는 시대다.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넘어 아이 인생의 운전대가 부모의 손에 쥐어진 느낌이 들지는 않는지. 경쟁이 심한 이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삶의 운전대를 남에게 넘긴 아이가 주도적이고 진취적으로 살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엄마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온다.
꼭 너 같은 딸 낳아봐라.
아이를 낳아 기르는 동안 내 삶을 내 맘대로 하지 못하는 경험을 우리는 해봤다.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고 차 한잔, 화장실 문제까지 내 몸을, 내 시간을 내 의지대로 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다. 그 결과 때때로 찾아왔던 무기력함과 좌절과 우울을 느껴보지 않았는가.
부모로서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끄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다. 바른 생각, 바른 행동은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는데 더없이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이거 먹어도 돼? 오늘은 뭐 입어? 이런 아이의 수많은 선택지를 대신 찍어주지 말아야겠다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