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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정한 글쓰기

결국 쓸 수 있는 글은 '나'에 대한 것이다

by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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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하겠다’ 라는 글이 아니라 ‘하고 있는 것’부터 관찰하며 써본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될 것이다.


책 뒤표지의 문장을 보고 흠칫 놀랐다. 머릿속에, 손끝에 맴도는 생각들을 밖으로 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를 콕 집어 말해주고 있었다. 당위성을 바탕으로 결론 있는 글들에 익숙했고 어쩌면 나도 그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글감은 나의 작은 경험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생각의 끝은 잘못된 시스템, 관습, 제도 탓을 하고 있었고 그런 생각의 흐름은 글로 완성되기가 어려웠다. 저자는 이러한 패턴에서 빠져나와 ‘나’에 대한 글을 쓸 수 있는 태도와 시선, 실질적인 팁을 무궁무진하게 나눠 준다.


1부는 글 쓰는 과정에 참고할 수 있는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조언이 담겨 있다. 글쓰기를 위한 독서부터 자전적 글쓰기를 위한 3요소까지, 이미 써놓은 글이 있는 사람들은 퇴고할 때 도움이 될 만한 유용한 도구를 분명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자신을 해체하기 위한 저자의 태도를 읽으며 자연스레 자신의 글쓰기 과정을 다시 한번 되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글쓰기를 당장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동기는 결핍과 허기라는 저자의 지적은 나를 다시 한번 흠칫 놀라게 했다. ‘쓰고 싶다’라는 생각에서 ‘쓴다’로 가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올라오는 허기를 일터나 다른 곳에서 더 빨리 얻을 수 있는 인정으로 눌러 버리는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일단 허기가 채워지고 결핍이 해소되면 나는 할 말을 잊어버리고 다시 생활인으로 돌아간다. 결핍과 허기를 더 극대화하고 일시적인 도파민 충족으로 해결하지 말라는 그의 말은 글쓰기의 시작점을 알려주었다.


책의 1부가 글쓰기 방법의 팁이라면, 2부는 저자의 실습 결과를 보여 준다. 글감인 나 자신, 나의 환경, 그 환경에 반응하는 자신을 포착해서 질문하고 파헤쳐 나온 문장들이 계속해서 휘몰아친다. 살아가며 마음에 걸렸던 순간들을 파헤친 과정, 여러 책에서 발견한 문장과 영감으로 삶을 해석한 과정을 보여준다. 이래라저래라 말로 하는 조언은 우리를 대부분 변화시키지 못한다. 하지만 누군가의 행동과 실천을 보면 마음이 더 동요되고 어느새 따라 움직이고 있다. 1부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한권의 책이 될 수도 있었지만, 저자의 생활 속 실천을 바탕으로 한 2부의 에세이들 덕분에 종종 더 자주 이 책을 다시 읽을 듯 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시선은 주변성과 소외의 경험에서 글쓰기의 시작과 나의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 피해의식과 주류에 대한 비판이 아닌 나의 소수자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글을 써보자는 조언이다. 수많은 순간이 머릿속에 지나간다. 이제 생각의 조각들을 모을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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