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할 필요 없다.
며칠 전 장례식장을 가던 길이었다.
같은 동네에 살아도 결국은 경조사가 있어야 다 모이고 얼굴을 보게 된다. 장례식에 가는 길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유학 갔던, 한 언니의 아들이 한 달 정도 한국에 머물다 금요일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듣고 누군가 미안해했다. 여러 일로 정신없이 바빠서 아이가 한국에 와 있는 동안 얼굴 한 번 보질 못했다며, 챙기지 못해 미안하다고 연거푸 얘기했다.
미안해하는 그 마음을 알지만, 미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아니까. 서로서로 인생 사는 게 얼마나 바쁜지 말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누군가를 챙기고 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단히 큰일이 없어도 나의 가족들과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만으로도 정신없이 삶이 지나간다.
나 하나를 데리고 사는 것도 아직 어설픈데 아이들과 배우자도 함께 살피고, 어느덧 나이 드신 부모님들도 마음 한편에 늘 함께 한다. 아무리 커도 아이들은 부모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고, 나이 앞에 약해지신 부모님들의 하루하루에도 나 같은 자식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나날이 늘어만 간다.
몸도 바쁘지만 마음이 더 바쁜 삶이 다 비슷한 것 같다.
마음이 바쁘든 말든 또 매일 해야 하는 것들도 항상 있다.
밥 해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 대단하지 않은 것 같은 것들을 매일 반복해야 운영되는 것이 삶이다. 너무 별거 아닌 것들이라 생각한 적도 있지만, 사실 삶의 밑거름이고 전부이기도 했다. 이 단순한 것 중 하나만 제대로 안 돼도, 삶은 여지없이 구멍이 났다.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서 수도 없이 반복됐던 장면이 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온 가족이 분주히 출근을 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하고 모여 밥을 먹고 치우며 하루를 마감했다. 그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을 드라마가 왜 자꾸 보여주는지 나는 몰랐다. 드라마 후반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너무 당연해서 지루할 정도로 보였던 가족들의 그 삶은 더 이상 영위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나도 가끔 그 드라마의 장면이 생각날 때가 있다. 문득문득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는 거 없이 바쁘게만 사는 것 같아 허무하다는 얘기를 하면서도, 다들 매일 무척 바쁘게 살고 있다. 얼마나 애를 쓰고 사는지 서로가 알고 있다.
그러니 좋아하는 사람들 챙기며 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닌 거다. 빨리 만나서 보고 싶어도, 뭘 좀 챙겨주고 싶어도, 마음이 돈이 시간이 여유 있지 못한 경우도 많다.
나도 그런 여러 순간들이 내 삶을 계속 스쳐가고 있다. 무엇이든 더 넉넉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챙겨주려는 그 마음이 더 고맙고, 혹 챙기지 못해도 서운할 일이 아닌 거다.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애쓰며 살고 있는지 최소한 우리끼리는 알고 있으니까.
'누굴 챙기고 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