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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같지 않은 날이 있다.

별거 아니지만 오늘은 별거인 것들

by 크런치바

내 마음 같지 않은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다. 그런데 자주, 그것도 당일에 수업을 취소하는 한 아이가 있다.


미리 말할 수 있었던 것들을 아이 어머니께서 당일에 말씀하시는 건 좀처럼 이해되지 않지만, 되도록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아, '노력'이라는 단어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굉장히 애를 많이 썼다. 나도 아이 키우며 정신없이 놓치며 사는 것들이 많으니까. 어느 날 문득 서로 이해하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아이 어머니께서는 10분 전에 수업을 취소하셨다. 이제 막 학교에서 나온 아이 이마에서 열이 난다고 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또?????'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런데 아픈 것을 어쩌랴!! 알겠다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로 결심했기에 당분간 다른 수업을 구할 마음도 없고, 그렇다면 이렇게 갑자기 주어진 시간에 쉬면 그만이라고 이미 마음의 정리도 끝낸 상태였다.


바뀌지 않는다는 것도, 그동안 여러 번 경험했다. 어쨌든 아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아이가 걱정도 됐다.


'그래, 차라리 잘 됐다!'


오늘은 스터디와 회의에 수업까지 종일 바빴다. 홀로 참석하는 스터디와 회의는 늘 긴장되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많이 길어져 다음 일정으로 빠듯하게 이동하기도 했다.


오후 5시, 그러고 보니 하루 중 처음으로 쉬는 타이밍이었다.


이참에 좀 쉬자고 앉아 있는데 단톡방이 열렸다. 오랜만에 모이자는 연락이었다.


6명이 모인 단톡방에서 유독 서로를 챙기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이래저래 피곤한 날, 마음이 잘 맞아 보이는 두 사람 사이가 괜히 부러웠다.


그때 마침 친한 언니가 말을 걸었다. 오늘 말고 다른 날 말 걸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 타이밍이 아쉽다.


정도 많고 착한 언니는 자기 얘기를 많이 하는 특징이 있다. 오늘 같은 날 이런 타이밍에는 언니가 내게 안부를 좀 물어봐주면 좋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요즘 언니는 특별한 일이 있었으니 더더욱 내게 할 말이 많았을 것이다. 언니는 오늘 유독 줄줄이 긴 카톡을 보냈다. 이런 날은 그러려니 하는 게 낫다. 하루 이틀 지나면 뒤늦게 깨닫고 안부를 묻는 언니다.


카톡이 끝이 없을 것 같아 일단 창을 닫았다. 언니는 조금 더 남겨둘 것이고, 나는 이따 모아서 읽는 게 나을 듯했다.


마음이 그때그때 척 하니 맞는 건, 친한 사이에서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직 하나 더 중요한 연락이 남아 있었다.


내일 시아버지의 탈장 수술이 예정돼 있다. 대학병원의 정확한 수술 일정은 전날에야 알 수 있는데 좀 전에 수술 시간 연락을 받았다.


그래서 내일 수업이 있는 아이 어머니께 한 번 더 연락을 드려야 했다. 수업이 가능하겠지만 '혹시' 늦거나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에 재차 미리 알려드리기 위함이었다.


내일 오전 병원에 가서 정확한 스케줄 확인 후 마지막 연락을 나누기로 했다. 날짜를 바꾸면 좋겠지만, 목요일이 아니면 시간이 없는 아이다. 그래서 방법이 없었다. 서로 미리 상의한 최선이 계속 연락을 나누는 것이었다.

수술 시간과 수업 스케줄이 잘 맞아떨어지면 좋겠다. 아이 어머님께서도 내심 바라셨다.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싶어, 벌써 마음이 바쁘다.


대단히 큰 일은 없었는데 조금씩 조금씩 내 마음 같지 않은 하루가 흘러갔다. 적고 보니 너무 별거 아닌가 싶어 내 속이 밴댕이인 건지, 소심한 건지 의문스럽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런 날이 있다.


이런 날 딱히 해결책은 없다. 이 날이 지나가면 괜찮다. 다 별 거 아니었던 게 자고 일어나 다음날이면 너무 잘 보인다.


어찌 됐든 하루가 마음 같지는 않고, 딱히 할 것도 없던 나는 '달콤 물복숭아' 팻말에 끌려 샀던 복숭아를 하나 꺼내 먹었다. 달콤한 것이, 다행히 복숭아만큼은 오늘 내 마음을 찰떡같이 채워줬다.


'이 맛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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