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앤 Aug 13. 2024

日, 권태

권태 「명사」 어떤 일이나 상태에 시들해져서 생기는 게으름이나 싫증

나는 무언가에 어렵게 몰입하고, 쉽게 빠져나오는 편이다.


세상에 관심이 많지만, 그 관심만큼 겁이 많아서 가벼운 마음으로 흥미를 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안정된 것을 좋아하고 내 주위의 것과 비슷한 것들을 좋아하며, 새로운 것을 꿈꾸지만 그 길을 선택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나, 욕심이 많은 성격인지라 무엇하나 몰두하기로 결정하면 그 전부를 취해야만 한다는 치기를 갖고 있기도 하다. 그렇게 나의 흥미와 욕심을 불태우면, 어김없이 '권태'가 찾아온다.


최근엔 일기가 그러했다. 그것이 나의 가장 항복하고 싶은 권태이자, 가장 극복하고 싶은 권태다.


불씨를 품은 사람이라고 해서 언제나 활활 타오르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그 불씨를 꽁꽁 숨어있던 작은 불씨가, 어느 순간 '화마(火魔)'가 되어 주위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내 속 안의 불씨는 별다른 특색이 없지만, 존재감이 없을 정도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겉에서 나를 본다면 나의 그 불씨는 활활 타오르는 산불과도 같을 것이다. 그만큼 나는 다양한 것을 물어왔고, 궁금해했으며, 또 그것에 대해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열정과 진심. 그것이 내 불씨가 커다랗게 보이는 이유였다. 그렇지만, 세상의 모든 것에 사랑, 관심, 열정 그리고 진심을 갖는 것은 지치는 일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자신의 불씨를 억지로라도 외면한다. 언젠가 찾아올 '권태'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권태는 참 하찮고 부질없어서, 이것이 정녕 내가 몰두하던 '삶'이었는가? -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들 투성이다. 도대체 무엇이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낸 것인지. 정녕 '이것'이 나의 세상이었는지. 후회와 반성. 그리고 새로운 다짐이 물밀듯 쓸려온다. 단순히 한 프로젝트를 끝내는 것부터 차근차근 이뤄낸 습관에 이르기까지. 나는 다양한 것에 기대하고 실망했으며, 도전했다.


"요즘 세상에 누가 '손으로 일기'를 써?"


친구들은 일기를 쓴다는 나의 말을 비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연하다는 듯 바라봤다. 어쩌면 자신의 친구들 중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이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에게 나는 종종 '사서 고생하는, 낭만주의자란 이름 하에 중2병 환자'였으니, 일기를 쓴다는 것이 거짓 같다가도 '나'이기에 납득이 되는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기는, 권태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시작한 것이었다. 즐거움을 흘려보내고, 새로움을 찾는 것이 아닌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간다고 한탄하는 내 하루가 어느 날, 사무치게 안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매일을 감사하고 행복하게'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모든 것이 지루했고 어떤 것도 크게 재밌지 않았기에 즐겁고 싶었을 뿐이다. 


나는 거창한 것들을 좋아하는 반면 사소한 것들로만 이루어진 사람이기에, 어쩌면 일기가 나의 거창한 부분이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었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고, 하루 일과에 대해 수다 떠는 것을 좋아하니 차근차근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또, 얼마 안 가 일기가 멈출 것을 걱정해 일기를 쓰는 초반에는 억지로 매일매일 일기를 펼쳤었다. 그것이 일주일, 한 달을 넘어가니 3,4일이 지나더라도 일기를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일기를 쓸 때면, 일기를 쓰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여러 감정들이 마치 제자리 마냥 툭툭 튀어나왔다. 조언과 충고, 후회와 반성이 담긴 일기라기보다는 사담과 이상만이 담긴 일기였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즐거움을 느꼈고, 행복을 만났으며, 무료함을 달랠 수 있었다. 


나는 나를 비효율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평소에는 무언가를 추진하고 사랑할 에너지를 구두쇠 마냥 아끼고 또 아끼더니, 막상 가벼운 계기 하나에 앞뒤 살피지 않고 돌진한다. 조금씩 조금씩,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성큼성큼, 투박하게 다가가기에 그 에너지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바닥을 보이고 만다. 권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 정작 또 다른 권태가 되어버려도 나는 계속해서 사랑할 무언가를 찾는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는 일절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터널을 걷는다. 그곳은 아주 터널인 탓에, 환풍기와 알록달록한 색깔로 꾸며진 홀로그램들이 곳곳에 있다. 운이 좋으면 아름다운 홀로그램에 오래 머물고, 운이 나쁘다면 짧게 지나쳐 나간다. 화려한 불빛이 남긴 잔상 역시, 마음에 오래 남기도하고 금방 떠나가기도 한다. 칙칙한 무채색의 벽은, 언젠가 여러 빛깔로 물든다. 그것이 나의 권태이며, 나의 삶이다. 


나는 권태를 쉽게 수긍한다. 내가 '무엇'에 권태를 느꼈든, 언젠가 다시 내가 '무엇'에 빠질 것이란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초조함이 아닌 기대라면, 분명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어떤 행복은 눈에 보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